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등 미국의 최근 금융위기가 1990년대 말 일본 금융위기의 '복사판'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둘다 부동산 거품 붕괴에서 위기가 시작된데다 증권사→은행→보험사 등 도미노식 파산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997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금융위기도 증권사의 파산으로부터 시작됐다. 그해 11월 산요증권은 과도한 투자손실로 인해 상장 증권사로는 처음으로 회사갱생법(한국의 법정관리)을 신청하면서 결국 파산했다. 20일 후 일본 4위 증권사였던 야마이치증권이 부실자산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진 폐업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을 주저했던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지난 15일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바로 '미국판 야마이치증권'인 셈이다.

이들 회사가 파산에 이른 근본 원인도 비슷하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도화선이었다. 일본에선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터져나온 주택금융 부실채권은 금융시장의 지뢰밭이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관련 회사들이 무너지고,부동산 회사에 투자했던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위기에 몰렸다.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일본에선 산요증권이 파산한 2주일 뒤 부실채권으로 경영난을 겪던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이 파산했다. 1년 뒤인 1998년 10월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그 후 생명보험회사의 파산도 이어졌다. 미국에서 주요 지방은행이 파산하고,AIG와 같은 대형 보험사가 위기에 몰린 것과 흡사한 전개 과정이다.

최근 미국 2위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를 인수한 것과 비슷한 사례가 일본에도 있었다. 1998년 9월 당시 다이와증권과 스미토모은행은 공동 출자로 증권회사를 설립하는 등 자본ㆍ업무 제휴를 전격 발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다. 일본 금융위기 땐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해외 업무를 축소하거나 중단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 금융회사들은 한창 글로벌 영업을 벌이다가 파산위기에 몰려 그 충격파가 세계 전체에 미치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