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ㆍ환율 올라 상환능력 약화 우려 … PFㆍ가계도 안심못해

국내 은행의 전략담당 임원들은 국내에서 만약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단초는 '중소기업'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금융 위기가 가계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돼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같은 투자은행(IB)으로 확산되는 경로를 밟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중소기업발 대출 연체가 금융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7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민ㆍ우리ㆍ하나ㆍ외환은행의 전략담당 부행장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네 명 중 세 명이 '중소기업들의 연쇄 도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김계성 우리은행 전략담당 부행장은 "금리와 환율이 올라 중소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이들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소기업발 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만큼 앞으로 중기 및 소호 대출을 가장 중점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최인규 국민은행 전략그룹 부행장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인해 금융사나 건설사가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향후 은행 경영의 핵심 현안으로는 네 명 모두 '대출 연체율 관리'를 1순위로 지목했다. 적극적인 수익 창출보다는 위험 관리가 우선이라는 얘기다. 2순위 현안으로는 최인규 국민은행 부행장과 장명기 외환은행 수석부행장이 '외화 유동성 문제'를 꼽은 반면 김계성 우리은행 부행장과 이성규 하나은행 부행장은 '수신 확보'를 지목했다. 이 부행장은 "해외발 악재로 증시 조정이 길어지면서 펀드 가입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나 항의가 늘어날 수 있다"며 "충분한 의사 소통을 통해 고객들의 불안감을 지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 요인 중에서는 '금리'가 은행 전략 수립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었다. 조달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의 본원적 수익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을 떨어뜨려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금리에 이어 부동산 시장 침체와 환율 급변이 은행 경영에 큰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주가에 대해서는 이성규 하나은행 부행장을 제외한 세 명은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내부 요인 가운데서는 은행원들의 전문성 및 노동 유연성 부족,고임금과 고령화 등이 전략 수립의 변수가 된다는 답이 많았다. 하지만 전략을 세우는 데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장명기 외환은행 수석부행장은 "불안한 금융시장 외에 중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도 은행 경영 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내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대응하고 자회사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