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명품에 치이고 저가 땡처리에 밀려…
한달간 마리끌레르·트래드클럽 등 3곳 부도
자금력있는 업체도 브랜드 구조조정·사옥 매각


국내 중소 패션업체들이 부도 공포에 휩싸였다. 최근 한 달여 동안 3곳이 도산했다.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해온 중견 패션업체들마저 수익성이 나쁜 브랜드를 접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경기 한파로 소비가 위축돼 자금 사정이 열악한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패션업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트래드클럽 등 잇단 부도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0일 남성복 브랜드 '트래드클럽'과 'WXM'을 운영해온 트래드클럽&21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올초만 해도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탤런트 이서진을 모델로 기용하며 적극적으로 유통망 확보에 나섰던 업체라 패션업계에 충격이 컸다. 이어 12일엔 트래드클럽&21의 관계사이면서 캐주얼 '티피코시'와 '제이코시'를 둔 유앤드림도 부도를 냈다. 무리한 사업확장과 경기악화의 엇박자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연쇄 부도를 맞은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엔 마리끌레르·이지엔느·이지엔느스포츠·에부 등을 운영하며 연간 1200억원대 매출을 올리던 패션네트가 갑작스레 부도를 냈다. 직원들이 단체 휴가를 떠난 사이 회사가 문을 닫아 직원들은 물론 유통업체들까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외에도 업계에선 몇몇 중소 패션업체들의 위기설이 돌고 있다.

◆이익 안 나는 브랜드 정리

그나마 자금사정이 나은 중견 패션업체들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들을 일제히 정리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공격적으로 론칭했던 신규 브랜드를 접고 대표 브랜드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톰보이는 지난해 선보인 세컨드 브랜드 '잇셀프바이톰보이'를 최근 접었다. 예신퍼슨스도 영캐주얼 브랜드 '허스트'를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하고 주력인 '코데즈컴바인'에만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여성 캐주얼 '크로커다일'을 운영하는 형지어패럴은 여성복 '끌레몽뜨' 매장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매장을 올초 100개까지 늘리며 급속도로 외형을 키웠지만 2006년 48억원,지난해 3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형지어패럴 관계자는 "밀려드는 수입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잠시 매장운영을 중단하고 리뉴얼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업체들마다 장사가 안 되는 신규 브랜드를 접고 기존 브랜드라도 지키겠다는 분위기다.


◆사옥 팔아 비상금 확보도

위축된 국내 경기가 단기간내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자금 확보를 위해 서둘러 사옥을 정리하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조이너스·꼼빠니아·예츠·트루젠 등 가두점 중심으로 매출을 유지해오던 인디에프(옛 나산)는 서울 도곡동 본사 사옥을 1000억원에 팔았다. 인디에프는 2년 전 세아상역에 인수된 뒤 캐릭터 캐주얼 브랜드 '테이트'를 전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폈지만 매출 부진,이자비용 증가 등으로 사옥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중견·중소 패션업체들의 어려움은 해외 명품 브랜드와 대기업이 국내 패션시장을 주도하면서 고가 의류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동시에 저가 땡처리 시장에선 소비자들이 싼 옷만 찾아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연초만 해도 경기 호전을 예상해 매출 목표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린 곳이 많았지만 갈수록 경기가 나빠져 업체마다 세일을 앞당기거나 매장 점주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