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작은 음악회와 그림 전시회를 겸한 결혼식이 열렸다. 예식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주례목사님이 등장하셨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례목사님이 바로 신랑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사연인 즉,목사님께서 결혼하려는 아들과 예비신부에게 "너희들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을 추천하면 내가 부탁해 보겠다"라고 했더니 아들이 "저를 가장 잘 알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주례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성공적인 '아버지 인생'을 살아오신 것이다. 이 시대에 아버지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 자녀의 존경을 받고 인생의 멘토가 됐다는 얘기는 많은 걸 생각케 했다.
결혼식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가슴 속에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움으로 밀려 왔다. 필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교장선생님을 지낸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반항아로 아버지 속을 꽤나 아프게 했다. 공부는 제껴놓고 좋아하던 유도에 빠져 있었던 것.이유없는 반항으로 학교에선 이미 문제아가 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아버지를 부르셨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아버지를 모시고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신발을 벗은 후 선생님 댁 대청마루에 먼저 올라서셨다. 그때 필자는 벗어놓은 아버지 구두에 구멍이 난 걸 처음 봤다. 이렇게 검소하신 아버지 속을 썩였으니.나는 순간 "더 이상 불효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철이 든 셈이다.

그 일은 분명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됐다. 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진 않으셨지만,침묵 속에서 내 심장을 흔들어 주신 셈이다 그 이후 아버지의 비에 젖은 구두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으면서 내 인생 항로의 나침반이 됐다.

내 자동차 안에는 아직도 가수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가 있다.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서 따라서 부르기도 한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른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웃는다. 체격은 남산만한 남자가 여자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