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지난해 2월 동양그룹의 한일합섬 인수와 관련,검찰이 LBO(Leveraged Buyoutㆍ차입매수) 방식의 위법성 여부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가운데 검찰 금융감독원 등 시장감시자와 업계 전문가 30여명이 모였다. 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비공개로 소집한 회의였다. 이날 모임에서 증권 전문가와 판ㆍ검사들은 LBO의 배임죄 적용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LBO방식에 대해 배임죄를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기업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업계 측 주장에 법조계 인사들은 "사안에 따라 선별적인 배임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맞섰다.

◆검찰 "LBO 자체가 배임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판ㆍ검사들은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보증이나 담보 제공을 동반할 경우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동양그룹의 한일합섬 인수는 이런 경우에 해당돼 향후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날 토론의 최대 관심사는 LBO 방식의 M&A(인수ㆍ합병)에 대해 어느 선까지 법적 제재를 가할 것인가에 대한 사법 당국의 판단기준에 쏠렸다. 검찰 측은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수하는 방법은 우량기업의 부채를 늘려 소수주주나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울고등검찰청 K 검사는 "1인 회사라도 맘대로 돈을 쓰면 횡령이나 배임죄에 걸린다"며 "피인수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해당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M&A과정에서 빌린 돈을 되갚는 건 명확히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LBO 방식으로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의 경우는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K 검사는 "이랜드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피인수기업(까르푸)의 매장 32곳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을 빌렸지만 동시에 이랜드 자체 보유자산을 담보로 제공했다"며 "해당 기업에 잠재적 피해를 입히지 않아 배임죄 성립이 어렵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인수기업의 담보제공이나 등기이사의 연대보증,제3자의 담보제공 등 '반대급부'가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였다. 또다른 검찰측 참석자인 P 검사는 "LBO의 문제점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이용해 돈 한푼 안들이고 우량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와 달리 SPC를 내세워 대상기업을 인수하는 건 위법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법원 "경영활동 최대한 보장"

이날 참석한 판사들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M&A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 새로운 판례를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대법원의 K 수석재판연구관은 "지난 2006년 신한건설의 피인수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LBO방식의 M&A에 대한 유일한 잣대가 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며 "이 경우는 개인이 시장에서 주식을 66%정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한 뒤 신한건설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고 예금에 질권을 설정하는 등 위법사실이 명백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선 최근 기업의 영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유도하고 있다"며 "신한건설 판례를 모든 LBO를 통한 M&A에 적용하기 힘든만큼 시장 선진화에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견도 나왔다. B 대법원 판사는 "법인은 무리한 담보 제출이나 대출을 통해 경영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자본충실의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며 "너무 광범위하게 배임죄를 묻는 건 문제가 있지만 LBO에는 배임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im@hankyung.com


용어풀이 LBO

LBO는 매수 대상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기업인수 자금의 대부분을 조달하는 기법으로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이 즐겨 사용한다. 국내에선 최근 LBO에 의한 M&A가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법적 규제 방안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