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가들은 전반적으로 약간의 광기를 가지고 있다. " '미쳤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활력을 전염시키고 비이성적인 자신감과 거대한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정신분석 전문의인 존 가트너는 이런 가설을 가지고 자본주의 나라 미국을 만든 기업인들의 정신을 분석했다. 성공한 미국 기업인들은 약간의 조증(躁症)인 '하이포마니아' 성향이 강하다는 그의 놀라운 주장이 이 책 <조증-성공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기질>에 담겨 있다.

미국을 만든 기업인들의 정신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사람,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 내면서 열정적으로 사고를 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가벼운 조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조증은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젊은 모짜르트가 들려 주었던 기교한 웃음 소리는 예술가의 조증 상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저자인 존 가트너는 이것이 기업가의 성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으며 글로벌 기업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에까지 의문을 품고 미국의 역사를 조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 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이 같은 성공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민자는 자신의 모국을 버리고 남보다 더 강한 과감성과 낙천성으로 위험을 감수하며,새로운 기회와 희망에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이다. 거대한 숲과 초원,사막으로 이어지는 아메리카 대륙은 이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른바 프런티어 정신은 이들의 낙천성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질은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조증의 증세와 매우 흡사하다.

조증의 특성을 보면 늘 에너지가 넘치고,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며,모험을 감수하고,과대망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이디어가 끊이질 않는다. 기질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이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험을 찾아 자유를 그리며 떠나간다.

이런 증상은 유전적으로 후세에 전해지며,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핵심 기질로 굳어진다. 미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미국 자유 경제의 터를 닦은 신교도 존 윈스롭,로저 윌리엄스,윌리엄 펜,그리고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만든 알렉산더 해밀턴과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한 크레이그 벤터 등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모두 타지에서 '희망'을 품고 바다를 건너와 미국을 건국했던 사람들이거나 조상들 못지않은 업적을 이룬 미국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미국에서 터진 서브프라임 사태는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투자은행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리고 있다. 베어스턴스,메릴린치는 주인이 바뀌었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신청을 했다. 미국 정부는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긴급 구제금융 지원을 발표했다. 이번 파산의 도미노는 세계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과연 미국은 회복될 수 있을까?

저자의 '조증' 가설을 적용하면,미국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것 같다. 조증은 바로 실패와 두려움에 맞서는 독특한 기질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끔찍한 테러가 발생해도 미국 사회는 쉽게 비관주의로 흐르지 않는다. 경제적 실패,도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너그럽다. 조증의 특성이 발휘된 것이다. 이런 저자의 생각을 미국 제일주의,미국 중심주의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도 경기 불안과 침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경제적 실패나 일시적 삶의 곤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게 한다. 혹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조증은 아닐까?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자신감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어려울수록 위기를 기회로 바라보려는 과감한 생각의 전환,조증과 같은 기업가적 특성을 부각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 sw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