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광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기(傳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 역사는 광기(狂氣)와 우연의 소산이다. 인류사를 뒤바꾼 위인들의 삶을 집중 탐구했던 츠바이크에게 역사란 남들 눈엔 무모하기만 한 열정과 비이성적 자신감, 곧 일종의 광기에 휩싸인 이들의 도전에 우연이 더해진 결과로 여겨졌던 듯하다.
세상의 눈과 평가,현실적 한계나 보상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간절한 소망과 무서운 집념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본 셈이다. 마젤란과 로버트 스콧,발보아같은 탐험가가 그랬고 대문호 괴테와 톨스토이,발자크와 작곡가 헨델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또한 그런 범주에 속할지 모른다. 우울증으로 자살했지만 그가 창출한,방대한 지식 속에 인간의 내면심리가 살아 숨쉬는 독특한 문체의 전기소설은 누구도 따라잡기 힘든 독보적 장르다. 물론 광기 내지 과대망상증이 지나치면 폐인을 넘어 히틀러같은 독재자,프랑켄슈타인같은 미치광이 과학자가 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약간의 광기가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도 분명한 모양이다. 존 가트너 교수(존스 홉킨스 의대)가 저서 '조증(躁症)'에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미국을 키운 건 편하고 익숙한 것을 떨치고 거대한 이상을 좇아 줄달음친 '하이포마니아들'이라고 주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흔히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은 유전자가 다르다고 한다.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매사 손익을 따지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전문경영인의 힘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감수형과 위험관리형의 차이인데 앞엔 있고 뒤엔 없는 요소가 광기라는 얘기다.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에 의하면 광기는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매달리는 어리석음과 동의어요,사랑과 학문,위대한 발견은 그런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맹목적 열정의 결과다. 똑똑한 이들이 참모에 그치거나 중도탈락하는 이유로 보통 지나친 계산을 꼽는다. 고민과 갈등으로 세월을 보내기보다 주어진 과제를 위해 미친 듯,미친 척 뛰어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세상의 눈과 평가,현실적 한계나 보상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간절한 소망과 무서운 집념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본 셈이다. 마젤란과 로버트 스콧,발보아같은 탐험가가 그랬고 대문호 괴테와 톨스토이,발자크와 작곡가 헨델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츠바이크 또한 그런 범주에 속할지 모른다. 우울증으로 자살했지만 그가 창출한,방대한 지식 속에 인간의 내면심리가 살아 숨쉬는 독특한 문체의 전기소설은 누구도 따라잡기 힘든 독보적 장르다. 물론 광기 내지 과대망상증이 지나치면 폐인을 넘어 히틀러같은 독재자,프랑켄슈타인같은 미치광이 과학자가 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약간의 광기가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도 분명한 모양이다. 존 가트너 교수(존스 홉킨스 의대)가 저서 '조증(躁症)'에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미국을 키운 건 편하고 익숙한 것을 떨치고 거대한 이상을 좇아 줄달음친 '하이포마니아들'이라고 주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흔히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은 유전자가 다르다고 한다.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매사 손익을 따지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전문경영인의 힘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감수형과 위험관리형의 차이인데 앞엔 있고 뒤엔 없는 요소가 광기라는 얘기다.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에 의하면 광기는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매달리는 어리석음과 동의어요,사랑과 학문,위대한 발견은 그런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맹목적 열정의 결과다. 똑똑한 이들이 참모에 그치거나 중도탈락하는 이유로 보통 지나친 계산을 꼽는다. 고민과 갈등으로 세월을 보내기보다 주어진 과제를 위해 미친 듯,미친 척 뛰어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