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끄는 부동산 경매투자] 현장르포/서울중앙지법 경매 8계‥주부·대학생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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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장 빈자리 없어
지난 18일 오전 10시40분.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8계는 154개 좌석이 가득찼다. 아이를 업은 주부는 경매전문가와 함께 왔으며 캐주얼 차림의 대학생도 눈에 띄었다. 입찰마감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빈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경매법정 주변에서 대출상품을 권유하거나 전문지를 파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입찰자가 덜 몰렸다"며 아쉬워했지만 일반 주택시장의 거래경색을 감안하면 확실히 온기가 느껴졌다. 입찰개시(10시) 전부터 자리에 앉아있던 임모씨(30)는 "집값이 떨어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며 "경매로 사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길래 경매시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경매에 참가했다는 임씨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아파트에 입찰했으나 아쉽게도 낙찰을 받지는 못했다.
"집값 떨어졌지만 아직 부담스러워…", 지지옥션 "경매대행 문의 2배 늘어"
경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 동행했던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의 권성안 팀장은 "경매대행을 의뢰하는 문의가 추석 전에는 1주일에 15건 정도 됐지만 최근에는 2배 정도 늘었다"며 "경매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2006년부터 올 봄까지 이어졌던 '경매광풍'이 재현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택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터라 경매시장만 '나홀로 호황'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저가매수의 기회를 경매에서 찾으려는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2회 이상 유찰된 사례가 잇따르고 입찰경쟁률마저 크게 낮아지면서 경매의 매력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입찰자 중 한 명은 경매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을 보니까 낙찰가율과 입찰경쟁률이 줄었다는 의미로 경매시장이 식었다는 표현을 쓰던데 수요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18일 나온 경매물건 가운데 강남구 대치동 국제아파트 158㎡형은 감정가가 19억원에 책정됐지만 2번 유찰 끝에 12억1600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입찰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낙찰가는 12억6800만원으로 감정가의 66%에 그쳤다. 이날 진행된 경매에서 최고 경쟁률은 10 대 1이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예전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
낙찰가율이 120% 이상 치솟으며 '묻지마 투자'를 이끌었던 다세대 주택의 인기도 예전만 못했다. 동작구 상도동 원일빌라 402호(대지지분 16.7㎡)의 낙찰가는 1억9119만원으로 감정가(1억9500만원)를 밑돌았다. 입찰자는 5명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싼 값에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는 수익률을 우선시하는 투자자들을 먼저 유인하고 있었다. 자영업자인 강모씨(50대)는 "다세대 주택을 매입해 전세나 월세를 준 뒤 되팔 생각"이라며 "쓸만한 매물이 늘어나는 반면 사람은 줄어 투자하기 좋은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매를 이용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와봤다는 박모씨(50대)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가락시영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주변 전세가가 오를 것 같다"며 "빌라를 사서 임대수익을 얻고자 준비에 나섰다"고 귀띔했다.
지지옥션 권 팀장은 조만간 실수요자들도 다수 경매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경매에 대해 거부감은 없지만 자신이 없어서 머뭇거렸던 일반인들이 가격 메리트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2분기에 경매가 결정된 물건이 하반기에 나오면 양과 질 모두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며 "대출을 많이 얻어 무리하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내집마련 기회로 삼을 만 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큰 틀에서 보면 경매는 일반 경기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물경기가 안 좋을 수록 경매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강 실장은 "낙찰가율이 70~75% 수준이면 수익률이 상당하기 때문에 황금구간이라고 불리는데 요즘 상황에서는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박종서 기자/윤형훈 인턴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