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유지 여부는 HSBC와 론스타가 결정할 사안이지만 금융위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HSBC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은 유감스럽다. "

HSBC가 19일 외환은행 인수 포기 의사를 밝힌 뒤 열린 금융위원회 브리핑에서 김광수 금융서비스국장이 한 말이다. 미국 월가에서 매력적인 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장삿속'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일언반구도 없이 계약을 뒤집은 것은 한국 시장을 무시했다는 게 감독당국의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HSBC가 국내 은행을 인수하려다 스스로 포기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특히 서울은행과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서는 실사까지 나섰다가 발을 빼 영업기밀을 고스란히 가져갔다는 비판도 받았다.

HSBC는 이번 외환은행 인수건에서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내는 등 외교채널을 동원하기도 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인수가 불발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와 관련된 법원 판결 전에는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던 금융위는 7월 말 본격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 11일엔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HSBC의 인수 자격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며 적절한 시기에 승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HSBC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으니 정부가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락가락한 것은 HSBC만이 아니다. '외자 프렌들리'를 강조해온 정부는 지난 3월 출범 직후 HSBC의 인수를 당장 승인해줄 것처럼 하더니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6월 법원 판결과 여론을 핑계로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7월에는 또다시 승인 쪽으로 느닷없이 태도를 바꿨다. 정부는 2006년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도 정치권 눈치만 살피며 심사 착수조차 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고 결국 계약이 깨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국을 업신여기는 듯한 HSBC의 태도도 문제지만 정부 당국이 이를 탓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