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금융당국이 잇달아 금융주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헤지펀드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공매도를 기본 투자전략으로 삼아온 헤지펀드로선 수익기반 약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헤지펀드들은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한 영국 금융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려 할 만큼 위협을 느끼고 있다. 현재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한 국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대만 등 10여개국에 달한다. 주식을 실제로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팔 수 있는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생존위협 받는 헤지펀드

헤지펀드 컨설팅업체 로저스케이스의 게빈 린치씨는 "금융주 공매도 금지로 인해 헤지펀드에서 자금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기에 따른 실적 부진과 투자자들의 자금회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헤지펀드에는 엎친데 덮친 격이다. 알리안츠자산운용의 이원일 사장은 "헤지펀드의 60∼70%는 주식투자를 할 때 '롱쇼트'(우량주식을 사고 불량주식을 공매도) 전략을 사용한다"며 "공매도 금지조치로 기본적인 투자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물론 헤지펀드로선 공매도 금지대상이 아닌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같은 상장 신용카드사를 타깃으로 롱쇼트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또 전환사채와 주식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아비트레이지(재정거래) 등의 수법도 있다. 하지만 어찌됐든 공매도 금지는 롱쇼트 전략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종목을 크게 줄여 헤지펀드 행보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틀림없다.

특히 롱쇼트 전략에 치중해온 헤지펀드의 경우 생사의 기로에 몰릴 수도 있다. 공매도 금지가 이뤄지면 즉시 공매도한 주식을 되사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799개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한 지난 19일 헤지펀드들은 공매도 포지션을 대거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세계적인 대형 헤지펀드들이 금융주 공매도 금지조치로 수백만파운드의 손해를 봤다며 영국 금융감독청(FSA)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헤지펀드 수익모델 수정 불가피

헤지펀드 연합체인 MFA의 리처드 베이커 사장은 "공매도는 시장의 안정을 보장하는 도구"라며 공매도 금지조치에 반발했다. 한 헤지펀드 대표는 "일시적인 공매도 금지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가치에 비해 부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평소에는 공매도가 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금융패닉 상태에서는 하락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와 D.E.쇼&코 등 일부 대형 헤지펀드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컴퓨터 모델을 통해 주식을 선택해온 이들 헤지펀드의 경우 거래 주식의 20%가 공매도 금지대상에 오르면서 모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윌리엄 클라크 뉴저지디비전 오브 인베스트먼트 국장은 "공매도 금지로 헤지펀드 투자 전략이 다양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헤지펀드들이 이번 조치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지만 2조달러에 이르는 헤지펀드 시장이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원일 사장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했던 1997년이 헤지펀드업계가 가장 어려웠던 때"라며 "지금은 헤지펀드 시장규모가 워낙 커진데다 헤지펀드를 원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아 몰락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