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학창시절 줄 곳 천재소리를 듣고 자랐다. 학업성적은 늘 1위를 달렸다. 어떤 시험이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시험의 달인이었다.

특이한 것은 책만 파는 어눌한 책벌레 ‘범생이’가 아니라는 점. 학과 임원을 맞아도 일을 똑 소리 나게, 그리고 신속하게 처리했다. 추진력도 대단했다. 교수들도 그를 촉망받는 인재로 추천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의 앞에 놓인 합격통지서는 무려 6개. 국내 5대기업과 공무원 합격통지서였다. 어디를 갈까하는 행복한 고민 끝에 안정적인 공직을 택했다. 직장에서도 탄탄대로였다. 상사들은 K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일을 시키면 신속, 정확하게 척척 해냈다.

그의 앞길은 더없이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5년 쯤 지나자 K의 고뇌는 깊어져갔다. 승진 기회가 묘연했다. 아무리 인사고과 성적이 우수해도 진급자리가 나지 않으면 승진하지 못하는 게 공직이다. 소위 ‘앞에 밀려있는 차’들이 많아 상사들이 퇴직하지 않는 승진 기회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의 능력보다 연공서열 비중이 큰 조직의 특성상 그의 능력은 성과로 직결되지 못했다. K의 아이디어와 성과는 모두 상사들의 성과로 속속 둔갑하고 있었다. 피라미드 결재 조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업무 흐름이었다. 직속 상사는 K의 성과를 바탕으로 어렵게 난 승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연공이 부족한 그로서는 이제 승진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조차 막막한 처지였다.

승진 기회가 많은 지역과 부서로 옮기길 희망했다. 그러나 전출 권한을 가진 상사들은 K를 놔주지 않았다. 부하인 K의 업무 성과를 취합하여 자신들의 성과를 올릴 속셈이었기에 유능한 부하직원을 다른 곳에 전출시키지 않으려했다.

K는 일을 할수록 자신의 능력을 도둑맞는 기분이 들었다. K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나는 공무원 체질이 아니라 사업체질이야. 능력만큼 우대 받겠어.”
K는 그답게 1년 동안 치밀하게 사업 준비를 하여 손익계산을 마치고 과감히 결행했다.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주유소를 인수했다. 퇴직금을 합해도 인수자금이 모자랐기에 담보 대출로 부족분을 메웠다. 1일 주유 차량 댓수와 주유량을 계산해보니 2년이면 손익분기점을 충분히 넘길 수 있었다. 희망에 부푼 K는 자기 능력만큼 보상받는 사업의 묘미에 푹 빠져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사업은 예상을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 치밀한 계산은 단지 계산일뿐이었다. 이상하게 매출액이 성과에 못 미쳤다. 알고 보니 전 주인이 주유소를 팔기위해 K가 들를 시간쯤에 아르바이트 주유 손님을 풀어서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바람을 잡은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근처에 신생주유소가 개업을 하였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족을 동원하고 손수 주유기를 잡았지만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빚을 떠않고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오락실을 비롯하여 남보다 한 발 앞서 유행 사업을 쫒아 개업했지만, 몇 달 뒤엔 주변에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계산을 하면 분명 이익이 남았는데 늘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쓴 잔을 들어야했다. 사회라는 정글법칙에서는 법칙이 없었다. 자신이 정보를 얻은 체인점 사장이나 인테리어 시공업체만 돈을 벌었다.

나를 찾은 그는 긴 한숨을 쉬었다.
“다시 공무원 시험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적성은 사업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죠.”
그로서는 다시 한 번 큰 결심을 한 터이지만, 그런 생각으로 다시 공무원 생활을 한들 시세타령뿐이 더하겠는가.

언젠가 양조장을 물려받아 경영하는 사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고령인 그 사장은 당대에 드물게 고학력이었다.
“사업을 물려주신 선친도 고학력이셨나요?”
“아니요. 학교 문턱도 제대로 못 나왔죠. 창업과 경영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선친이 세운 회사를 경리처럼 그냥 운영만고 있을 뿐입니다.”

K는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남보다 머리가 좋아 계산이 빠를 뿐이었다. 기존의 정보를 조합하는 능력이지 총체적인 직관은 아니었다. 학과의 시험성적처럼 정해진 만들어진 정보를 얻고 틀에서 처리하는 효율은 좋지만 장사의 철학이 없었다. 다시 말해 빠른 시간에 돈 벌 욕심만 있었지 장사에 영혼을 싣지 않았다.

“당신은 공무원 체질도 아니고 사업가체질도 아닙니다.”
K는 내 말에 숨을 죽이고 들었다.
“당신은 리더가 아니라 참모 타입입니다. 시험의 달인일 뿐입니다. 사장은 성적순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업을 하든 공무원을 하든 참조하세요.”
그리고 양조장 사장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해외에서는 자국에 유학 온 한국의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을 보고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한번은 데생솜씨에 놀란다. 정말 사진처럼 정확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손놀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외국의 대학 교수들은 역시 한국에서 촉망받는 우수한 학생들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그 놀라움은 금세 또 다른 놀라움이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세요.”
이 말에 상황은 급변한다. 유학생들은 감도 못 잡고 우물쭈물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두 번 놀란다고 한다. 단지 복사기에 불과했지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가와는 한참 멀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제야 한국인이 머리는 좋은데 한국에서 위대한 예술가가 나오지 못하는지 수긍을 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 교육의 단면이다. 학부형이나 학생이나 학업성적이 우수하면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능력과 적성을 시험성적으로 획일화하는 우리의 학벌사회는 바벨탑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유치원서부터 시험의 달인으로 키워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 수험생은 단지 시험의 달인이 될 뿐이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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