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깐깐함'에 약삭빠른 가르시아 자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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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라이더컵 9년만에 우승
규칙 칼같이 따져 '언플레이어블 볼' 유도
호랑이 빠진 자리서 맹활약… 승리 일등공신
"평소 동료로서 존경하지만,오늘은 둘이 비즈니스(경기)를 하러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14홀 내내 싸우다시피 했습니다.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다시 친구로 돌아갈 겁니다. "
한국계 프로골퍼 앤서니 김(23.나이키골프)이 '독기'를 품고 대든 끝에 제37회 라이더컵에서 미국팀이 9년 만에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다.
라이더컵(미국-유럽 남자프로골프대항전) 최종일 싱글 12매치를 앞둔 22일(한국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발할라GC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격년제로 열리는 이 대회에서 미국은 최근 세 번 연속 유럽팀에 패한 데다,이번 대회 둘째날까지도 2점차(9-7)로 박빙의 리드를 하고 있었기 때문.승부는 이날 가름날 판이었고,그 첫 주자로 미국은 세계 랭킹 10위 앤서니 김을,유럽은 랭킹 5위 세르히오 가르시아(28.스페인)를 내세웠다.
두 선수의 팽팽한 신경전은 첫 홀부터 시작됐다. 경기 전 '오늘 컨시드(기브)는 없다'고 선언한 김의 뻔뻔함(?)이 초반부터 가르시아의 신경을 건드린 것.어프로치샷을 김이 홀 옆 60㎝,가르시아가 90㎝ 지점에 떨군 뒤 가르시아가 김을 보며 두 사람 모두 '버디 컨시드를 주자'는 뜻으로 "굿,굿?"을 외쳤다. 그러자 앤서니 김은 "홀아웃 해야 한다"고 잘라말했다. 버디퍼트를 성공한 가르시아가 볼을 컵에서 확 끄집어냄과 동시에 앤서니 김의 볼마커도 집어올렸다. 컨시드를 안 준 김을 무안하게 하려는 행동이었다.
김은 그러나 가르시아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경기 전의 작심을 풀지 않았다. 2번홀에서 김이 90㎝ 거리의 버디를 성공하고 1홀 차로 앞서나가자 4번홀에서는 가르시아가 김의 신경을 건드렸다. 자신은 60㎝ 버디퍼트를 컨시드받은 반면,그보다 반뼘 정도 긴 김의 버디퍼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버디퍼트를 넣은 김은 6번홀에서 가르시아에게 반격을 가했다. 가르시아의 티샷이 러프에 빠졌다. 그린을 향해 못치고 페어웨이로 빼내는 수밖에 없는 상황.가르시아는 발 끝이 시멘트 계단에 걸리므로 무벌타 드롭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김은 경기위원 앞에서 "계단이 아니더라도 칠 수 없는 상황이니 구제받을 수 없다"(골프규칙 24조2항 예외a)고 제동을 걸었다. 결국 가르시아는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했고,김은 2홀 차로 앞서나갔다. 가르시아는 7번홀에서는 두 번이나 볼을 물에 빠뜨리며 그린에 다다랐는데,경기위원마저 "이 홀 포기할 거지?"라고 말해 열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2홀 뒤져있던 가르시아는 11번홀에서 또 한번 김의 '비정함'에 이를 깨물어야 했다. 긴 퍼트를 홀 옆 90㎝에 붙인 뒤 김을 쳐다보았으나 김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르시아는 결국 그 파퍼트를 실패하면서 추격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12,13번홀을 잇따라 따낸 김은 14번홀에서 2.4m 파퍼트를 성공하며 5&4(4홀 남기고 5홀 차 승리)의 일방적 승리를 거뒀다.
김이 큰 스코어 차로 유럽팀의 에이스를 제압했다는 소리를 들은 미국팀은 기세가 오른 듯 케니 페리,J B 홈스,짐 퓨릭이 잇따라 이기고 1999년 이후 9년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미국 nbc스포츠닷컴이 '미국팀 승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위가 단장인 폴 에이징거(49%),2위는 앤서니 김(21%)으로 나왔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