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 한성대 교수ㆍ경제학 >

올해는 세계 자동차 최대 기업이었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러나 GM은 창립 100주년을 자축하기는커녕 파산 신청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몰려있다. 올해 초 세계 자동차 1위 기업 자리를 일본 도요타에 내준 GM은 미국시장에서도 계속 고전하고 있다. 세계 경기 하락,고유가,배기가스 규제 등 자동차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악조건이지만 GM의 부진은 두드러진다. 지난 7월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대수가 전월 대비 26.1% 줄어 23만3000대에 그쳤다. 반면 도요타의 판매대수 감소는 11.9%에 그쳤다.

GM은 지난 7월 회사의 장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8월13일 신용평가업체인 무디스는 GM의 현금 흐름에 대한 우려와 미국내 자동차 판매 감소를 이유로 이회사 채권 등급을 'B3'에서 'C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GM의 경영 상황이 나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부터 누적된 손실규모가 790억달러에 달해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GM이 오죽했으면 11년간 지속해 오던,전 세계 10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에미상과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방송광고를 올해 포기하기로 했겠는가. 적대적 노사관계,미래의 회사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나눠먹기식 노사교섭 관행이 GM 100년 왕국 몰락의 가장 주요한 이유이다.

2000년대 초반 도요타와 GM 모두 흑자 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흑자로 발생한 잉여자금을 나누는 방식이 달랐다. 도요타는 계속되는 흑자에도 불구하고 직원 봉급을 5년간 동결해 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반면 GM은 퇴직 종업원들에 대해서도 퇴직연금과 의료혜택을 확대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경영층이 굴복해 자동차 1대의 판매액에서 직원들의 복지후생비가 차지하는 금액이 평균 1500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짧은 기간에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의 노사관계를 보면 GM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2006년까지 1994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 파업을 연례행사화해 온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난해를 무분규로 넘기더니 올해는 추석 전 임협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또다시 진통을 겪었다. 다행히 22일 밤 극적으로 노사가 2차 임협 잠정안에 합의하면서 돌파구를 마련,25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기아차 노사도 재협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노조원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동차 세계대전을 심각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시장에서도 일본차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해마다 반복하는 투쟁을 통해 임금이나 복지수준이 향상되는 데 비례해 생산성 등 경쟁력 강화도 이뤄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좋은 처우 및 야간 근무를 없애는 획기적인 안이 포함됐던 현대자동차의 1차 임협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는 점은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에게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노조와 근로자들이 경영성과의 단기적인 분배에 집착하는 것은 회사가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조직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GM을 비롯한 미국 자동차 회사의 몰락은 단기적인 경영성과에 집착하는 지배구조에 기인하기도 한다. GM과는 달리 소유주 경영을 하는 현대ㆍ기아자동차는 회사의 미래와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조직원들의 공감과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