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왕(King Henry).'뉴스위크 최신호(9월20일자)의 표지 제목이다. 최근 금융위기를 통해 권한이 대폭 강화된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강력한 왕권으로 영국의 중세와 근대를 이끈 헨리 왕들에 빗대 표현한 말이다. 폴슨 재무장관이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뜨고 있다. 일각에선 '누구보다 월가를 잘 아는 폴슨이 금융위기를 관장하는 것은 불행 속의 행운"이라며 그를 '월가의 구세주'로 치켜세우고 있다. 그의 탁월한 감각과 저돌적인 추진력 앞에선 대공황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감'이 떨어지는 학자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폴슨 장관의 별명은 '망치(hammer)'.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 저돌적으로 상대선수를 밀어붙이는 경기 스타일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는 1974년 골드만삭스에 입사,승진을 거듭한 끝에 1999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6년 골드만삭스를 세계 최강의 투자은행으로 굳힌 그를 임기를 같이할 재무장관으로 기용했다. 그는 재무장관 비준 청문회에서 "확장되는 금융규제를 막겠다"고 공언했다. "성가신 정부 개입은 미국 금융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모기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철저하게 '변절'했다. 그가 신봉하던 자유방임주의를 과감하게 저버린 채 별명처럼 망치를 들고 과감한 '관치'에 나섰다. 베어스턴스 구제금융을 주도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17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양대 모기지사인 패니메이 프레디맥과 세계 최대 보험사 AIG를 차례로 정부 관리 아래 편입시켰다.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으로 모든 부실을 청소하겠다'는 내용의 종합 구제금융안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폴슨은 이를 통해 △조세와 재정 정책의 감독자라는 기존 역할 외에 △미 국방부 1년 예산보다 많은 7000억달러의 긴급 구제자금 관리ㆍ운용 △금융사에 대한 지원과 모기지 관련 자산 인수 등을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됐다. 역대 74명의 재무장관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을 쥔 '킹 헨리'로 떠오른 것이다.

그의 관치해법이 강화될수록 한편에선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반시장 정책을 펴는 '월스트리트식 사회주의자'란 평가도 나온다. 폴슨은 이에 대해 "(구제금융 조치는) 불쾌하지만 꼭 필요한(unpleasant but necessary) 조치"라며 "어떤 방법이 옳으냐에 대한 토론으로 밤을 새울 수 있지만 누군가는 어두운 밤(위기)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항변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