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경매로 서울의 '강남 헐값 입성'을 노리던 직장인 김씨는 다음 달로 경매가 예정된 한 강남구 아파트의 감정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 시세보다 싸기는커녕 오히려 4억~5억원 비쌌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 아파트가 유찰될 것으로 보고 다음번 경매를 노리기로 했다.

23일 경매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고가아파트를 중심으로 시세나 실거래가보다 경매 감정가가 비싼 주택이 속출하고 있다. 만약 감정가대로 낙찰받는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감정가 부풀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전용 165㎡짜리 아파트(3층)는 감정가 31억원으로 책정받아 다음 달 경매된다. 국토해양부 부동산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같은 주택형 33층 아파트는 지난 4월 27억원에 매매됐으며 현재 시세도 26억원 안팎이다. 저층 감정가가 고층 실거래가보다 무려 4억원이나 비싼 셈이다.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전용 177㎡짜리 아파트(10층)는 24억원으로 감정받아 이달 경매에 들어갔지만 유찰돼 다음 달 다시 경매된다. 이 아파트는 오히려 크기가 작은 전용 175㎡짜리(22층)가 4월 실거래가 21억5000만원에 팔렸다.

고가 감정은 강남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눈에 띈다. 다음 달 경매되는 관악구 봉천동 우성아파트 전용 115㎡(15층)짜리는 감정가가 6억원이지만 7월 실거래가는 4억9500만원(3층)이었다.

이 같은 '고가 감정'에 대해 경매업계 일각에서는 감정평가기관이 경매물건을 내놓는 채권자와 채무자를 위해 감정가를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감정평가 시점에서 최초 경매까지 통상 5∼6개월 걸리는 시차를 감안해도 감정가격이 시세보다 수억원을 웃도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가 감정 아파트들은 감정 당시의 실거래가도 감정가보다 낮아 이 같은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감정가 24억원의 아크로비스타 전용 177㎡짜리는 감정시점이 6월로 이보다 크기가 작은 전용 175㎡짜리가 21억5000만원에 거래된 시기(4월)와 불과 2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 기간은 강남 고가아파트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시기였다.

경매절차는 통상 신청일로부터 6개월 정도 걸린다. 신청이 접수되면 2주일 내 법원이 감정평가사를 선정,경매의뢰 물건에 대해 감정평가를 한다. 이후 경매를 통해 돈을 나눠받을 권리자에게 통지하는 시간이 2∼3개월 걸린다. 여기에 한 달간의 매각공고 후 2주 뒤 최초 경매가 부쳐지기 때문에 모두 6개월이 소요된다. 채무자가 재감정을 요구하면 1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감정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감정가와 시세 차이가 클 수 있는 고가아파트는 2개 이상의 감정평가기관에 감정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법무법인 산하의 강은현 실장은 "공시가격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가아파트와 연립 다세대주택은 복수의 감정기관에서 시차를 두고 감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할 만하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