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단기성과주의의 함정) 소제목:<과도한 인센티브 메스 가해야>

파생상품 전성시대를 연 금융공학이론의 주춧돌을 놓은 로버트 머튼 교수와 마이런 숄즈 교수(1997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는 1994년 설립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에 파트너로 참여하며 투자활동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LTCM은 이들의 명성에 힘입어 출범 당시 12억5000만달러의 자본을 모았고 초년도부터 28%에 이르는 수익률을 기록해 투자자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특히 11명의 파트너들은 이익의 25%를 나눠가지며 단숨에 부유층으로 올라서는 대박을 터트렸다.

LTCM은 채권 장기물과 단기물의 금리차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주무기로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차입금을 대규모로 끌어들여 투자금을 키우는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로 수익률을 밀어올렸고 연평균 40%에 이르는 배당을 실시했다. 파트너들이 막대한 인센티브를 챙겼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채무불이행) 선언과 함께 파국을 맞았다. 지나치게 차입금에 의존해 투자를 늘린 게 화근이었다. 파산 당시 자본금은 47억달러였지만 투자한 파생상품 규모는 1조2500억달러에 달했다. 금융시장 붕괴를 우려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직접 개입하고서야 겨우 사태가 수습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에게도 현실 경제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러시아 사태는 돌발 변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LTCM 파산은 월가에 교훈이 되지 못했다. 거대 투자은행(IB)들은 막대한 외부자금을 끌어들이고 파생상품에 매달리며 단기수익 극대화를 위해 있는대로 욕심을 부렸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지난해 7천억달러 가량의 외부자금을 끌어들였지만 고객 자산은 230억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함께 거대한 거품이 터졌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골드만삭스를 비롯 세계금융시장을 떡주무르듯 하던 투자은행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파산하거나, 다른 은행에 인수당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

이들이 리스크 관리를 태만히 한 것은 당장의 성과에 따라 연봉과 인센티브가 좌우돼 온 탓이 크다. 미 언론보도에 따르면 15년 경력의 월가 펀드 매니저는 연봉이 20만~30만달러에 이르고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키면 연봉의 5~10배에 달하는 보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우선 실적을 늘리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우는 성과를 부풀리고 연봉 잔치를 벌이는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취임한 존 테인 메릴린치 CEO는 1년도 채 안됐지만 보너스 스톡옵션 등의 형태로 2500만 달러(약 290억원)가량을 받을 전망이라고 한다. 댄 애리얼리가 쓴 <상식밖의 경제학>에 따르면 미국 CEO들의 평균보수는 1976년 일반직원의 36배였지만 최근엔 369배 수준까지 불어났다. 단 하루만 일해도 일반직원들의 연봉 이상을 챙긴다는 뜻이다. 과연 이들이 그만한 일을 하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월급 도둑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과 거대 통신회사 월드컴 등이 대규모 분식회계로 몰락의 길을 밟은 것도 이런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월가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는 6가지 방법을 제시하면서 단기실적에 기초한 인센티브 제공 방식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첫번째로 꼽았다. 미국식 경영의 상징처럼 돼 온 단기성과주의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효용성을 근본적으로 재점검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