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상황 고려못해

기름값 부담이 커지면서 자동차 연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1ℓ로 몇 ㎞를 달리느냐'를 나타내는 공인연비를 최우선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8월부터 새로운 에너지소비효율등급제가 시행되면서 공인연비는 배기량에 관계없이 ℓ당 주행거리가 15㎞ 이상이면 1등급,14.9~12.8㎞는 2등급,12.7~10.6㎞는 3등급,10.5~8.4㎞는 4등급,8.3㎞이하는 5등급으로 매겨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과연 공인연비가 믿을 만한 것인지 의문을 품는 경우도 있다. 신차에 의무적으로 부착되는 공인연비와 실제 주행연비의 차이가 적지 않아서다. 공인연비가 16.6㎞/ℓ(자동)인 경차 '마티즈'의 주행연비가 8~9㎞/ℓ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가 하면,공인연비가 11㎞/ℓ인 차량을 몰았더니 주행연비가 14㎞/ℓ로 오히려 더 높게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인연비와 주행연비가 달라지는 이유와 공인연비를 측정하는 방법 등 공인연비와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본다.

◆공인연비와 주행연비 왜 다를까

자동차의 연비는 주행여건과 주행거리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가속과 급제동을 많이 하거나 불필요한 화물을 많이 싣고,전기장치를 과도하게 사용하고,타이어 공기압이 적정수준보다 낮으면 연비가 떨어진다"며 "공인연비는 여러가지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실제 도로 위에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짜여진 조건 하에 실험대 위에서 연비를 재기 때문에 실제 주행연비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인연비는 시험준비,모의주행,배기가스 분석 등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시험준비 과정에선 주행거리가 160㎞ 이하인 신차를 굴림대 형태의 차대동력계에 얹은 후 예비주행을 실시한 후 25℃의 항온항습실에서 12~36시간 동안 보관한다.

모의주행 과정에서는 시동을 걸지 않은 상태로 차대동력계 위에 차량을 올린 후 공인연비 모의주행 모드에 따라 모의 주행을 실시한다. 이때 사용되는 모의주행모드(CVS-75)는 도심지역의 주행특성을 시뮬레이션해 총 주행거리 17.85㎞,평균속도 34.1㎞/h,최고속도 91.2㎞/h,정지횟수 23회 조건에 맞춰 총 42.3분 동안 실험을 진행한다. 배기가스 분석 과정은 모의주행을 하는 동안 자동차의 배기구에 연결된 시료채취관에 모아진 배기가스를 분석해 차량의 연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출가스에 포함된 탄소의 양으로 연료소모량을 계산해 연비를 구하는 방법으로 정확도와 정밀도가 높다.

◆수입차 주행연비가 공인연비보다 높은 이유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에선 연비 측정 시설을 갖춘 자체 시험·연구소에서 연비를 잰 후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하는 것으로 공인연비를 측정한다. 하지만 자체 측정소가 없는 수입차들은 항만 하역 후 무작위로 대상 차량을 선정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자동차부품연구원,한국석유품질관리원 등 외부시험기관에서 공인연비를 측정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국산차가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체 시험소를 갖추고 직접 공인연비를 잴 수 있는 국산차는 차량이 최적화된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수입차보다 상대적으로 공인연비가 '과대평가'될 수밖에 없다"며 "국산차는 공인연비에 비해 주행연비가 낮고,수입차는 공인연비에 비해 주행연비가 높은 이유도 '홈그라운드'의 이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국산차가 해외에 나가면 수입차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게 된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