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자초한 고통을 국민들에게 전가하지 마라" "여우에게 닭장을 지키게 하지 말고,백지수표에 절대 서명하지 마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3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7000억달러 규모의 금융권 구제금융법안 처리를 촉구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두 사람은 의회가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주지 않으면 미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오히려 의원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당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국 외환위기 당시 20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조성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었던 것과 유사하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온갖 우울한 경제지표를 동원해 "(법안 처리로)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실직자와 주택차압이 늘어나고 성장도 위축돼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슨 장관도 "가계와 기업의 활력 및 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금융시장 신용경색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구제금융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상원의원들은 질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민주당 소속의 셔로드 브라운 의원은 "지역구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으며,공화당 소속의 짐 버닝 의원은 "월가의 고통을 납세자들에게 확산시키지 말라"고 비난했다. 크리스토퍼 도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납세자 보호와 적절한 감독,투명과 책임성,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차압 방지 등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가세했다.

민주당의 찰스 슈머 의원은 "구제금융 7000억달러를 한꺼번에 승인하는 게 아니라 분할 승인해주는 방안도 있다"고 거들었다.

공화당의 조 바튼 의원은 "하나님이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해서 우리가 7일 만에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폴슨 장관은 이 같은 반발에 "금융위기의 파급효과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납세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안겨줄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구제금융법안은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구제금융 카드 외에 현재 남아 있는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표결 시기를 언급하진 않았으나 "법안을 제정하는 작업이 진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