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 호텔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로 "하하하,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는 모습이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그 인상은 그대로다. '접속'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지 11년 만에 '멋진 하루'라는 열한 번째 영화로 찾아온 전도연은 그동안 결혼하고 '칸의 여왕'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멋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녀 같다. 자신의 일인 연기에 항상 몰입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가 보다.

여배우 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전도연은 어두운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이 연상된다. 화려함보다는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며 모두에게 편안한 기쁨을 주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접속' '약속'으로 단박에 '멜로의 여왕'에 올랐지만,전도연에게 내재돼 있는 연기에 대한 열정은 장르를 넘어서 있다. 17세의 홍연을 연기한 '내 마음의 풍금'이나 파격적인 불륜의 '해피엔드',팜파탈을 연기한 '피도 눈물도 없이','칸의 보석'이 될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밀양',그리고 일상의 소소함 속에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을 연기한 '멋진 하루'까지,전도연이 연기한 11편의 영화를 돌려보면 연기폭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전도연은 자주 "현장이 가장 편안하다"는 말을 한다. 스태프들은 전도연의 매력에 대해 "연기를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의 풍금' 촬영 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닭들을 강에서 구하기 위해 전도연이 뛰어들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초여름 장면을 11월 초겨울에 촬영했다. 먼저 닭들을 강에 빠뜨렸으나 차가운 강물 때문에 닭들이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위험하다고 안전장치를 한 후에 하자고 했지만 전도연은 "그냥 하자"며 여름 복장으로 연기를 해냈다.

지난해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전도연이 가진 부담은 꽤 컸을 것이다. 이젠 뭔가 특별한(?) 역할을 맡아 독특한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대사이지만 범상치 않게 대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택한 영화는 평범한 여성의 심리를 느낄 수 있는 '멋진 하루'다. 결혼과 칸 수상 이후 전도연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 '멋진 하루'를 찍으면서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자는 말을 먼저 하곤 했다. 하정우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있는데,"이 신을 다 찍고 소화제 먹으면 돼요"라며 몇 번이고 다시 촬영했다. 그리고 진짜 소화제를 먹었다. 하정우를 비롯한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며 호흡을 맞췄고,스태프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먼저 나서서 하곤 했다. 배우 전도연이 지금보다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몇 개월 후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된 전도연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