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씨(47ㆍ사진)의 직업은 의사다. 공식 직함은 '청담 박종호 정신과 원장'.진료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예술의전당 문화예술강좌 오페라 강의를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7시간의 연속 강의다. 이것만이 아니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클래식 전문 음반점 '풍월당'의 대표이면서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불멸의 오페라>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의사,클래식 음악 전문가,작가 등 별로 관련 없는 분야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아 풍월당에서 만난 박씨에게 사진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쇼는 안합니다"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클래식 음악 전문가답게 푸근한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를 확 뒤집는 '까칠한' 대답이다.

잘 보니까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군살 없는 몸매에 입고 있는 양복도 슬림하게 떨어지는 디올(Dior) 스타일이다. 셔츠 역시 레귤러가 아닌 와이드 칼라.코가 날씬한 갈색 가죽구두까지 신었다. 의사라기보다 밀라노에서 온 이탈리아 신사의 모습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코디할 수 있는 철저함도 그런 까칠함의 연장선 위에 있는 걸까. 이어지는 말에서 '까칠함'의 이유가 나왔다.

"예술은 개성에서 나오죠.개성은 까칠함이고.제게 까칠함은 타협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

박씨가 풍월당 직원들에게 자유 복장을 허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장에 하이힐을 신든지,청바지를 입든지 풍월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까칠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주인과 직원의 개성이 제한없이 발휘되면서 '풍월당'이 클래식 음악의 명소로 자리잡은 것이다.

박씨가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중ㆍ고등학교 시절부터다. 이유없이 음악이 좋았다고 한다. 집안에서도 음악적 배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의대에 들어갔지만 의학이 인문학적인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고,그 탈출구를 음악에서 찾았다. 정신과를 택한 것도 자신의 이 같은 성향을 감안한 결과다.

박씨가 유명해진 것은 외환위기 직후에 어느 화랑에서 시작한 오페라 강좌를 통해서다. 오페라 복식에서부터 작가와 등장 인물의 심리까지 입체적인 강의를 하는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에는 '풍월당'을 열었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에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클래식 음반점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그의 글과 강의가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곡 해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의 정신세계까지 고려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이 90여명에 이르는 병원을 두 개나 경영할 정도로 성공(?)한 것도 이런 인문학적 성향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텐데 굳이 음반점과 강의,진료를 모두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균형감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란다.

"병원에만 매달리면 과잉 진료의 위험이 있고,글쓰기에만 매달리면 아웃풋(output)만 있지 인풋(input)은 꿈도 못꾸죠.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각 분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

문제는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다. 박씨는 하루 평균 5시간만 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에 있는 러닝머신에서 한시간씩 달린다. 뛰면서 새로 나온 음반을 듣는다. 낮에는 진료와 강의를 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 그래도 그는 지치지 않는다. 글을 쓰며 받은 스트레스는 강의를 하며 풀고,강의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진료를 통해 푼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안풀리면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어느 호텔에서 잠을 깨면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박물관으로 간다. 천천히 구경하고 나와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다. 호텔에 돌아와 쉬다가 저녁엔 마을에 있는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황홀한 여행>이다.

그 많은 활동 중에서 박씨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글을 쓸 수 있는 삶'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다음에는 직접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을 함께 책에 싣고 싶다고 한다. 소재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예술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두에 관한 책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글=박신영ㆍ사진=허문찬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