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쟁 고아들을 수용하는 두 보육원 중 한 곳에는 빵과 잼,오렌지 주스를 더 제공했고 다른 한 곳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지요. 6개월 뒤 아이들의 성장 상태를 살펴봤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추가 식량을 지급한 곳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았는데,표준 식사량만 제공한 보육원의 아이들은 잘 자랐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조건을 바꿔 정반대의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또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원인을 찾던 연구팀은 마침내 음식이 아니라 보육시설의 원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빵을 더 많이 받은 보육원의 원장은 강압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아이들이 늘 공포 속에 살았고 결국 제대로 못 자랐습니다. 반면 밝고 따사로운 성품을 지닌 원장의 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은 식량이 추가로 지원되지 않아도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의 예상 밖 결과도 마찬가지였죠.공교롭게도 강압적인 원장이 그 곳으로 옮겨갔던 겁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사회심리학 교수인 셸리 테일러는 <보살핌>(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이 얘기와 함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작은 사랑은 값비싼 추가 식품보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데 훨씬 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보살핌의 힘'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약육강식으로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투쟁 또는 도피' 이론에 대항해 서로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는 '보살핌과 어울림'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는 특히 여성의 보살핌 본능에 주목하는군요. 적의 위협과 맞닥뜨릴 때 남성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 치는 것과 달리 여성은 자식들을 품에 안고 침착하게 다독이며 애정을 쏟는 방법으로 대처한다는 겁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은 공격성을 키우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게 되고,여성은 출산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살핌은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같은 정신적 질병뿐만 아니라 심장병 당뇨병 같은 신체적인 질병도 쉽고 빠르게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군요. 그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 문제를 지닌 아이들에게 보살핌이 발휘하는 힘은 실로 중요하다"며 "사회적 유대가 강력한 독감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는다거나 만성 질병의 진행을 저지한다는 사례 등을 볼 때 보살핌은 사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