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CEO] ㈜한국리서치‥"리서치의 시작은 소비자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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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BizⓝCEO 기획특별판 입니다 >
리서치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반드시 수반되는 필수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묻고 답해 얻은 자료를 정해진 틀에 의해 분석한다고 해서 모든 리서치가 제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리서치(www.hrc.co.kr)의 노익상 대표는 "좋은 리서치의 시작은 조사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단언한다. 소비자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 이유를 알아내려면 선입견을 버리고 진정으로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공감대 형성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는 것. 국내 리서치업계의 개척자다운 '리서치론(論)'이다.
노 대표는 업계 1세대로 구분된다. 마케팅 조사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1972년 (재)한국행동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업계에 입문했고,외국계 조사기업 ASI의 수석연구원을 거쳐 1978년 ㈜한국리서치를 창업했다. 국내 토종 리서치 기업의 첫 등장이었다.
직원 한 명을 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회사는 현재 정규사원 200여명을 두고 올 매출 400억원을 예상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때부터 누적된 조사건수는 1만건이 훌쩍 넘는다. 사원들에게 늘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가치를 키우라"고 주문하는 노 대표는 개척,육성,동맹을 경영의 핵심으로 삼는다. 무엇이든 가장 먼저 해보고,향후 자립할 수 있는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사람이든 조직이든 목적과 이해관계가 같으면 운명을 같이한다는 철학이다. 그는 "기업은 꾸준히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존속할 수 없다"며 "진실이 담긴 조사 자료와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기업의 존속 목적이자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리서치의 인사 체계도 특징적이다. 연봉제 대신 호봉제를 유지하고 최소 이윤의 초과분은 모두 직원에게 돌려주는 인센티브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이기도 한 노 대표는 국내외의 명산을 두루 섭렵한 산악인으로 최근 창립 3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백두산을 등반하기도 했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
리서치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 반드시 수반되는 필수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묻고 답해 얻은 자료를 정해진 틀에 의해 분석한다고 해서 모든 리서치가 제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리서치(www.hrc.co.kr)의 노익상 대표는 "좋은 리서치의 시작은 조사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단언한다. 소비자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 이유를 알아내려면 선입견을 버리고 진정으로 소비자를 이해하려는 공감대 형성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는 것. 국내 리서치업계의 개척자다운 '리서치론(論)'이다.
노 대표는 업계 1세대로 구분된다. 마케팅 조사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1972년 (재)한국행동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업계에 입문했고,외국계 조사기업 ASI의 수석연구원을 거쳐 1978년 ㈜한국리서치를 창업했다. 국내 토종 리서치 기업의 첫 등장이었다.
직원 한 명을 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회사는 현재 정규사원 200여명을 두고 올 매출 400억원을 예상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때부터 누적된 조사건수는 1만건이 훌쩍 넘는다. 사원들에게 늘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가치를 키우라"고 주문하는 노 대표는 개척,육성,동맹을 경영의 핵심으로 삼는다. 무엇이든 가장 먼저 해보고,향후 자립할 수 있는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사람이든 조직이든 목적과 이해관계가 같으면 운명을 같이한다는 철학이다. 그는 "기업은 꾸준히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존속할 수 없다"며 "진실이 담긴 조사 자료와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기업의 존속 목적이자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리서치의 인사 체계도 특징적이다. 연봉제 대신 호봉제를 유지하고 최소 이윤의 초과분은 모두 직원에게 돌려주는 인센티브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이기도 한 노 대표는 국내외의 명산을 두루 섭렵한 산악인으로 최근 창립 3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백두산을 등반하기도 했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