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외국계 증권사들의 투자보고서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현저히 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개별 종목에 대한 '매도'의견을 극도로 꺼리는 국내 증권사와 달리 과감한 의견 개진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외국계 증권사들의 입지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리치 등 대표 주자들이 속속 쓰러지면서 크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들어 개별 종목에 대한 외국계 증권사 분석보고서 의견과 해당 주가가 상반되게 움직이는 '디커플링' 현상이 부쩍 늘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인 맥쿼리는 이날 LG마이크론에 대해 목표주가를 기존 3만5000원에서 4만2000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투자의견도 '시장수익률하회'에서 '시장수익률상회'로 높여 잡았다.

하지만 이 같은 맥쿼리의 투자의견은 시장에서 보기좋게 빗나갔다. 사실상 '매도'에서 '매수'를 권고하는 쪽으로 180도 입장이 바뀐 것이어서 평상시 같으면 투심을 이끌며 강력한 호재로 작용할만 했지만 이날은 그렇지 못했다.

LG마이크론은 지난주말까지 계속된 4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끝내고 하락반전, 이날 2.77% 빠진 3만6800원에 마감됐다.

지난 26일 골드만삭스의 HNH에 대한 보고서도 약발 잃은 외국계 증권사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골드만삭스는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하게 되면 전자상거래시장 경쟁이 줄어들어 광고 가격이 하락할 것이고, NHN다음의 2009년 매출도 감소할 수 있다며 투자의견 '중립'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NHN은 전날보다 0.13% 오른 14만9800원에 장을 마쳤고, 다음만 1%대 하락세를 보였다.

BNP파리바증권도 지난 25일 다음에 대해 성장세가 둔화됐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7만2000원에서 5만원으로 대폭 낮춘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주가는 오히려 강보합으로 마감됐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일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과거에도 국내 보다는 자신들의 주고객층인 외국인 입맛에 맞는 분석보고서를 많이 내놓아 신뢰도가 크게 저하돼 온게 사실"이라며 "특히 리먼 사태 이후 이 같은 신뢰 상실과 더불어 국내시장 왜곡 사례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