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휩쓴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은행들이 잇따라 국유화되는가 하면 금융회사들의 자산매각에 따른 인수ㆍ합병(M&A)으로 유럽 금융시장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또 금융회사들의 파산으로 신용불안이 높아지면서 은행 간 달러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리보금리가 급등하는 등 자금시장도 극심한 혼란 상태다.

◆구제금융과 M&A…업계 지각변동

블룸버그통신은 29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정부가 역내 최대 금융회사인 포르티스에 112억유로(163억달러)의 긴급자금을 투입해 부분 국유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47억유로를 제공하는 벨기에 정부는 포르티스 벨기에 사업부문의 49%를 사들이고,각각 40억유로와 25억유로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정부도 각국 사업부문에서 비슷한 지분만큼을 인수하게 된다. 포르티스는 이와 함께 지난해 영국의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했던 ABN암로 지분을 매각키로 했다. 포르티스 주가는 ABN암로 지분 인수에 따른 자금 사정 악화와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상각과 관련한 자본확충이 여의치 않을 것이란 분석에 지난주 35%나 급락했다.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해가면서 '뱅크런(예금 대규모 인출)' 사태도 우려됐다.

또 이날 BBC방송은 영국 정부가 대형 모기지은행 브래드포드 앤드 빙글리(B&B)의 모기지 및 대출 자산을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200억파운드(366억달러)에 달하는 B&B의 고객예금과 200개 지점망은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에 매각키로 했다. 이는 지난 19일 영국 최대 모기지업체인 핼리팩스뱅크 오브 스코틀랜드(HBOS)가 시중은행인 로이즈TSB에 인수된 데 이어 나온 조치다. 영국 정부는 앞서 올 2월에도 모기지업체로 뱅크런 사태가 벌어진 노던록을 국유화했다.

이 밖에 파산위기에 몰린 독일 2위의 상업용 모기지은행 하이포 레알 에스테이트는 이날 현지 금융회사 컨소시엄이 350억유로(500억달러)의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한도)을 제공키로 함에 따라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독일에선 최근 도이체방크가 포스트방크를,코메르츠방크가 드레스드너방크를 인수하는 등 은행업계의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은행 간 달러 거래도 차질

유럽의 자금시장도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 금융시장에서 1주일 이상 기간의 은행 간 달러자금 거래가 정지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잇따른 금융회사의 파산으로 신용불안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은행 간 거래를 피해 당사자와의 직접 거래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 지표금리인 달러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 3개월물은 지난 주말 연 3.77%를 기록,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직전이던 지난 12일과 비교해 1%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8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런 상황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 금융시장이 주요국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달러 자금에 의존하는 상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각국 연금펀드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스위스 연금펀드의 경우 지난 12개월간 약 300억스위스프랑(275억달러)∼600억스위스프랑(550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