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정책이 시장 만능을 외치던 미국과 결별을 선언했다. " 미국 금융 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7일 월가 투자은행에 대한 감독 실패가 금융위기에 일조했음을 인정하고 자율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외신들의 평가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가 도입한 이후 세계 금융정책을 주도해온 자유방임주의가 30년 만에 폐기되고 규제 중심의 시대가 막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관료주의의 폐해로 지목받던 규제는 이제 불안전한 시장의 '안전판'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규제 강화에 앞장서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SEC가 지난 18일 그동안 투기적 수단으로 활용된 공매도를 금지하고 나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뒤인 20일 미 하원은 원유 등 각종 상품시장에서 투기거래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뉴욕주는 23일 62조달러 규모의 신용파생상품인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를 금융위기 원인의 하나로 지목하고,내년부터 이를 규제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SEC는 20개 이상의 헤지펀드에 공문을 보내고 AIG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모건스탠리 워싱턴뮤추얼 메릴린치 등 6개 금융주에 대한 거래내역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거래내역을 비밀에 부치는 헤지펀드업계의 불문율을 깬 것이었다. 동시에 트레이더들의 이메일 수신 및 발신 내역도 요구했다. "미국이 '금융사회주의'로 흐르고 있다"(공화당 짐 버닝 상원의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도 공매도 제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금융사와 신용평가회사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시장의 자율 기능으로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식의 금융정책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공황 이후 한때 금융시장을 지배했던 감독 중심 시대가 부활하는 것은 '규제 없는 시장'이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금융 환경은 '규제 완화'(deregulation)라기보다는 '무규제'(unregulation)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