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이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8월 경상수지 적자가 월 단위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 환율 상승 압력을 고조시키고 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25분 현재 전날보다 35.30원이 급등한 1224.2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3년 4월28일 기록한 1237.8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미 구제금융안 부결 소식이 나온데다 8월 경상수지 적자 발표가 나와 개장과 동시에 전날보다 11.2원이 급등한 1200원으로 출발했다. 이후 역내외 매수세가 가세하면서 단숨에 1230원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밤사이 미 하원은 자본 시장 회생을 위해 재무부에 최대 7000억달러를 들여 부실 모기지 채권들을 매입할 것을 허용하는 내용의 구제 금융 법안을 228대 205로 부결시켰다.

이 소식에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확산되면서 뉴욕증시는 폭락하고 채권가격은 급등했다. 이날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778포인트(6.98%) 추락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9% 안팎의 하락률을 보였다. 반면 미국채 시장은 랠리를 펼치면서 30년물 가격이 3포인트 이상 뛰어올랐고 지난주 금요일 후반 0.12%를 나타냈던 1개월물 미국채 금리는 한 때 0.05%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또 이날 발표된 우리나라 8월 중 경상수지 적자는 전월의 25억3000만달러에서 47억1000만달러로 확대되면서 월 단위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경상이전수지 적자는 줄었지만 상품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데 따른 것이다.

1~8월 중 경상수지는 125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5억달러 흑자에서 반전됐다.

밤사이 열린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소폭 하락세로 마감됐다. 원달러 1개월물은 1184원 수준으로 1개월 스왑포인트가 3.75원 수준인 것으로 감안할 때 이날 NDF 종가는 전날 서울외환시장 현물환 종가보다 1.05원 정도 낮은 수준이다. 구제금융안 부결로 글로벌 금융 위기 우려가 고조됐지만 미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 실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시장참가자들은 전했다.

이같은 악재들로 인해 환율 급등을 우려한 외환당국은 서둘러 수습에 나섰지만 상승 탄력을 이기지 못했다. 한국은행의 안병찬 국제국장은 이날 아침 한 통신사와의 통화에서 "금융시장 차입 사정이 어려워지고 심리적 불안 증폭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차단하기 위해 스왑시장 자금 공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기술적 저항선인 1170원이 쉽게 무너진데 이어 1200원선 마저 쉽게 붕괴돼 환율 폭등이 어디까지 갈 지 가늠이 안된다"면서 "미국발 금융악재가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어 투자자들이 롱 마인드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딜러는 또 "원화 가치 폭락이 금리 급등, 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락, 금융기관 부실화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환당국의 합리적이고 긴 안목의 시장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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