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 서강대 교수ㆍ과학커뮤니케이션 >

이웃 중국의 정체성이 정말 혼란스럽다. 한편으로는 '과기흥국'(科技興國)을 앞세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올림픽도 개최했고,선저우 7호 우주인의 우주 유영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중국의 질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세계의 공장'을 운영하는 경제대국으로 엄청난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 중국이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멜라민 분유와 사료 파동이 특히 그렇다. 멜라민은 우리가 먹는 식품과는 거리가 먼 공업용 원료다. 우유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이익에 눈이 멀었다고 하더라도 젖먹이 유아까지 먹는 식용 우유에 그런 물질을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멜라민이 맹독성 독극물이 아니었던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지만 우리가 느낀 충격은 대단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산 저질 식품과 '전쟁'을 벌여왔다. 이제 우리에게 '중국산'은 곧 '저질'을 뜻한다. 중국산의 품질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곧바로 들통이 날 것을 알면서도 꽃게와 생선에 납덩이를 넣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독극물이 든 중국산 만두가 있었고,미국에서는 오염된 치약이 있었다.

중국 어선의 횡포도 대단하다. 그들에게 '국경'과 '영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우리 경찰관을 폭행,감금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까지 생겼다.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왜곡하고,소중한 역사 유물을 마구 훼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도무지 선진 국제 사회를 함께 살아갈 이웃이라고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중국의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얼굴엔 공통적인 이유가 보인다. 지금 중국은 그동안의 공산주의 계획 경제에서 벗어나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중국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공산주의 시대의 중앙통제식 제도와 부패 구조가 여전히 남아있다. 올림픽과 선저우의 성공은 아직도 남아있는 중앙정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를 통해서 이제 막 축적되고 있는 경제적 여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구시대의 '통제'와 새로운 '여유'가 절묘한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시너지가 항상 긍정적으로만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격차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빠른 경제 성장이 멜라민 파동과 같은 황당한 사태를 일으킬 기회를 확대시키고 있다. 시장의 자율 통제 기능이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너져가고 있는 정부의 통제 시스템이 오히려 탈선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바뀌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중국 의존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중국산 제품을 거부하면 우리 자신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식품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중국산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식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원산지 표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비자에게 선택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중국산 이외의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 무작정 싼 것만 고집한다면 아무 것도 달라질 수 없다. 중국에도 고급 제품이 적지 않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