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상황에서 지폐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금은 언제나 쓸모가 있다. "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0여년 전 미 의회에서 한 말이다. 그동안 하나의 가정으로만 여겨져온 이 '극한상황 시나리오'가 요즘 현실화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금융위기의 공포에 놀란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금고로 금덩이를 바쁘게 옮기고 있다"며 "최근 런던금시장협회 연례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도 전례 없는 금 투자 열기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시장에서 금 현물 가격은 지난달 29일 온스당 905달러까지 치솟으며 최근 한 달 새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 가공업체와 각국 조폐국들은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금괴와 금화 부족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제러미 찰스 런던금시장협회장은 "지난 33년간 이 시장에 몸담았지만 요즘 같은 상황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주 미 조폐국은 '아메리칸 버펄로 금화'의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금화 수요가 최근 급증하면서 재고가 바닥나 당분간 판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빈 필하모닉 금화'를 만드는 오스트리아 조폐국도 수요 급증으로 최근 주 7일 근무제로 전환했다.

헤지펀드들도 나서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조너선 스펄 상품거래 담당자는 "금시장에 헤지펀드와 같은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의 인기는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