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파란만장했던 삶 자살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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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우리 곁을 떠나간 최진실은 1988년 데뷔이후 20년동안 대중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으며 영화와 드라마, CF에서 최고자리에 오른 한국 대표 배우였다.
지난 1988년 MBC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데뷔한 최진실은 1990년대 초반 모 전자업체 CF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란 광고 카피로 '만인의 여인'으로 스타덤에 오르며 연예계 '샛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최고의 스타
최진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당대 최고의 배우에 성큼 성큼 다가섰다.
1990년 '우리들의 천국', 1992년 '질투', 1993년 '폭풍의 계절', 1997년 '별은 내 가슴에', 1998년 '그대 그리고 나', 1999년 '장미와 콩나물' 등 1990년대 무수한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열연했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최수종과 호흡을 맞춘 MBC TV 드라마 '질투'는 최고 56.1%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었다. 또 '그대 그리고 나'와 '별은 내 가슴에'로 푸근한 이미지를 추가하며 '최진실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였다.
▲스크린에서도 활짝 핀 꽃
최진실의 돋보이는 연기는 스크린에서도 빛났다. 영화 '남부군'을 시작으로 1990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1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2년 '미스터 맘마',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7년 '편지' 등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스크린에서도 맹활약했다.
특히 1994년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코믹 영화 '마누라 죽이기'로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 배우로도 완전히 성공했다. 이어 선보인 '편지'는 불치병에 걸린 남편(박신양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내용의 최루성 멜러 영화로, 최진실과 박신양의 인기에 힘입어 서울 관객 72만을 동원한 당대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화려함 뒤에 아픔 나날들
배우로서는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삶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00년 야구 선수 조성민과 결혼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였지만 3년 9개월 만인 2004년 9월 협의 이혼하는 아픔을 경험했다.
최진실은 이 과정에서 폭행·고소사건에 연이어 연루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네티즌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는 등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연기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전 남편 조성민과의 사이에 난 두 자녀의 성을 최씨로 변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려한 복귀
최진실은 2006년 KBS 2TV '장밋빛 인생'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암에 걸린 억척 주부 맹순이로 연기한 이 드라마에서 안방 극장의 주부들을 울리는 감동적인 연기로 모든 아픔을 털어냈다.
최진실 과연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겠는가라는 우려도 완전히 씻어냈다. 2005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네티즌상·베스트커플상, 2006년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등으로 최고의 연말을 보냈다.
'장밋빛 인생'으로 더욱 노련해진 연기력을 선보인 최진실은 올 3월 끝난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최고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혀 갔다. 정준호와 호흡을 이루며 중년 여성들의 로망스를 대신하기도 했다.
▲故 안재환과 관련 악성 루머
그러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최진실은 최근 친한 동료 정선희의 남편 故 안재환 자살 사건과 관련, 연일 '사채업설' 소문으로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봉착해 하면서 힘든 속내를 주변에 털어놓기도 했다.
숨지기 하루 전인 1일에는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모 제약회사의 CF 촬영 중 몸이 안 좋아 도중에 촬영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세상을 등진 최진실은 최정상의 스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고통과 괴로움의 상처를 가진한 채 삶을 마감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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