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여러 나라 중 페루만큼 구경거리가 많은 나라도 없다. 남미대륙 중부 태평양에 접해 있는 페루는 불가사의한 잉카문명의 본거지.'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비롯한 잉카문명의 흔적이 산재해 있어 나라 전체가 고대 유적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페루여행의 출발점은 수도 리마.잉카제국을 멸망시켰던 스페인 군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건설된 고도다. 19세기 초 남미 여러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남미지역 스페인 영토 전체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 곳이다.
리마에는 대통령 관저를 비롯해 교회,박물관 등 식민지 초기 세워진 건축물들이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인류고고학박물관에는 잉카를 비롯 치무,나스카,파차카막 등 선 잉카문명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기,직물,미라 등이 전시돼 있다.
리마에서 동남쪽으로 580㎞ 떨어진 곳에 쿠스코가 있다.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장악했던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해발 3400m 안데스 산중에 자리한 쿠스코는 원주민 말로 '배꼽''중심'이란 뜻.잉카의 태양신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티티카카 호수에 보내면서 황금지팡이가 꽂히는 곳에 정착하라고 했는데 그들이 쿠스코에 지팡이를 박고 도시를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잉카제국은 1531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무너졌다. 스페인왕의 사절로 왔다는 피사로의 말에 속아 잉카의 아타왈파 황제는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만났다. 아타왈파는 개종을 하고 스페인왕에게 충성하라는 피사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을 내동댕이쳤다. 그것을 신호로 스페인군의 총이 불을 뿜었고 아타왈파는 사로잡혔다. 아타왈파가 자신이 갇힌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을 모아 건넸으나 피사로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었다. 결국 아타왈파는 목이 졸려 죽었고 잉카인은 뿔뿔이 흩어졌다.
쿠스코에 남아 있는 잉카 유적의 대표는 사크사이와만이 꼽힌다.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여라'는 뜻의 사크사이와만은 커다란 돌을 3단으로 쌓아 만든 요새.잉카제국의 힘과 석조기술의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성벽에 올라서면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광장에서는 매년 6월24일 '인티 라이미'(태양축제)가 열려 잉카제국의 의식을 재연한다.
쿠스코에서 우루밤바강을 따라 100㎞쯤 내려가면 만나는 해발 2280m의 산정(山頂)도시 마추픽추를 뻬놓을 수 없다.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공격을 피해 건설한 도시인데 16세기에 버려진 이후 400여년간 묻혀 있다가 1911년 미국의 대학교수인 하이램 빙엄에 의해 발견했다.
원주민 말로 '오래된 봉우리'란 뜻의 마추픽추는 산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공중도시'라고도 한다. 신성한 광장을 중심으로 해시계로 추정되는 정상의 제례용 석조물,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콘도르신전과 감옥,그리고 계단식 밭 등이 남아 있는 마추픽추는 잉카문명의 신비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리마 동남쪽 370㎞ 지점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펼쳐진 나스카 사막도 경이롭다. 드넓은 평원에 수수께끼 같은 선과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져 있다. '나스카 라인'이라고 하는 이 지상그림은 100여개 이상 남아 있다. 그 크기가 너무 커 경비행기를 타고 300m 이상의 하늘 위에서 내려다봐야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