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들은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통해 서울과 처음 만났다. 지상 23층,거대한 성냥갑 형상의 이 건물에서 시민들은 과거 고도성장을 구가하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영욕을 떠올린다. 현재 서울시가 추구하는 '맑고 매력있는 세계도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특히 2010년 인천국제공항과 서울역을 바로 잇는 인천공항철도가 개통하면 이 같은 대우빌딩의 상징성도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작년 이 건물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9600억원에 사들인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자 리모델링을 결정하고 최근 공사에 들어갔다. 당초 외관 디자인을 100% 바꿔 알루미늄과 유리 재질을 사용하는 등 최첨단 이미지의 건물로 꾸민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시와 중구가 외관을 바꾸려면 300억~400억원 상당의 땅을 기부채납하라고 요구해서다. 모건스탠리 관계자는 "1000억원 이상을 들여 친환경,에너지절감형 건축물로 리모델링하려고 했지만 서울시에서 인근 땅을 사들여 기부채납하라고 했다"면서 "매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결국 외관에는 손대지 않은 채 내부 수리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지금이라도 서울시가 방침을 철회해 준다면 다시 리모델링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게 된 건 대우빌딩이 주변 도시환경정비구역(과거 도심재개발구역)에 포함돼 있어 건물의 기둥이나 보(대들보) 등을 바꾸는 중대한 변경을 할 경우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상 2400㎡의 땅을 기부채납하도록 돼 있기 때문.

이런 법률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맘만 먹으면 기부채납을 받지 않고 대우빌딩 리모델링을 전향적으로 허용해줄 수 있다. 서울시가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ㆍ해제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오는 10일부터 70억원을 들여 세계디자인올림픽을 연다. 외국 손님들이 민간사업자가 자신의 부담으로 서울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걸 막는 서울시 행정을 들을까봐 걱정된다.

이호기 건설부동산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