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7000억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구제금융안이 마련될 때까지 워싱턴과 월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지난달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 계획을 밝힌 뒤 17일 신뢰의 위기가 확산되면서 주식시장을 초토화시킨 상황,이후 투자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워싱턴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구제금융안을 어떻게 마련하게 됐는지를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지금 문제는 주식시장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라고 단정했다. 증시 위기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명확히 드러나지만 신뢰의 위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9월15일 새벽 리먼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다음 날에는 머니마켓펀드(MMF)인 리저브프라이머리펀드에서 환매가 일어나고 금융사의 부도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빼가는 현상이 빚어졌다. 기관투자가들은 불과 이틀 새 MMF에서 2900억달러를 회수해갔다.

리먼이 파산하자 이번에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가 폭락하고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스프레드가 뜀박질을 했다. MMF에서도 손실이 발생하는 마당에 차입 비중이 높은 투자은행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헤지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골드만과 모건스탠리에 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17일 월가 최고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애크만은 골드만삭스 경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워런 버핏으로부터 수혈을 받는 방식으로라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리먼 파산이 예상됐던 주말(14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은밀히 준비해왔던 7000억달러 규모의 긴급 금융구제법안을 추진할 시점이 왔음을 알게 됐다.

베어스턴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태스크포스에서는 심지어 '뱅크 홀리데이'(돈 인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전국 은행들의 문을 닫는 것으로 1933년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극약처방)를 실시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그러나 버냉키와 폴슨은 이 방안이 투자자들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고,결국 구제금융법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8일 구제금융 계획은 CNBC방송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버냉키와 폴슨은 그날 오후 곧바로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 동의를 요청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