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바나 레스토랑에 가면 와인리스트를 펼치는 순간 주눅들게 마련이다. 영어라면 읽기라도 하겠는데 주로 프랑스어,이탈리아어여서 발음도 쉽지 않다. 도대체 와인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는 것일까.

우선 '와인 본고장'인 프랑스 보르도에선 '샤토(Chateauㆍ약어 Ch.ㆍ와이너리)'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라벨에 샤토가 있으면 거의 보르도 와인이라고 보면 된다. '샤토 무통 로쉴드(Ch.Mouton Rothschild)''샤토 마고(Ch.Margaux)''샤토 라투르(Ch.Latour)' 등이 대표적이다.

샤토가 발달하지 않은 부르고뉴 지역에선 산지가 와인명인 경우가 많다. 샤토와 비슷한 '도멘(Domaine)'이란 개념이 있지만 수도원 소유의 포도밭을 여러 사람에게 분양하면서 대형 와이너리가 발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테밀리옹(Saint-Emilion)''보졸레(Beaujolais)''토스카나(Toscana)''포이약(Pauillac)''그라브(Graves)''로마네 콩티(Romane-Conti)' 등 산지 자체가 와인명이 된 것.이탈리아도 '바롤로(Barolo)''바르바레스코(Barbaresco)''키안티(Chianti)' 등이 '산지=와인명'이다. 대체로 작은 동네일수록 고급 와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대륙(미국ㆍ칠레ㆍ호주 등)에선 대체로 포도품종을 와인명으로 쓴다. 와이너리 이름을 붙이기엔 역사나 전통에서 구대륙(유럽)에 밀리기 때문.'카베르네소비뇽(Cabernet Sauvignon)''메를로(Merlot)''샤르도네(Chardonnay)''피노누아(Pinot Noir)''산지오베제(Sangiovese)''리슬링(Riesling)' 등이 라벨에 크게 표기돼 있다. 또 '켄달잭슨(Kendall-Jackson)''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야(Gaja)''베라짜노(Verrazzano)''몬테소디(Montesodi)'처럼 회사명이나 별도 브랜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에피소드가 얽힌 '애칭'을 와인명으로 쓰기도 한다. 샴페인을 처음 만든 수도사의 이름을 딴 '동페리뇽(Dom Perignon)',와인 제조사 '산페드로'의 설립연도이지만 국내에선 '18홀65타'로 더 유명한 칠레산 '1865',오크통에 검은 고양이가 앉으면 숙성이 잘 된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독일의 '슈바르체카츠(Schwarze Katz)',포도원 일꾼들이 와인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이름을 지었다는 칠레산 '카시제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ㆍ악마의 셀러)' 등이 있다.

와인과 친해지고 싶은데 이름부터 낯설어 주저하고 있다면 우선 대표적인 포도품종,유명 포도산지 정도만 알아둬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대형마트 와인코너에서 가끔 아는 체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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