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허브' 위한 도시 레벨업 필수

지역 주도적 발전 체제 전환 전략 시급

지난 30년간 수도권을 옥죄던 '과밀 억제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분업을 통해 상생 번영하는 방향으로 지역발전 전략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수도권을 억눌러 지역 균형 발전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지역별로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를 발굴해 자생력을 키워주는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각개약진'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광역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전략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 경쟁 치열

한국에서 경제 교육 문화 정치 등 국가의 중추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비롯된 지역 격차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지방의 낙후 이유를 수도권 과밀에서 찾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는 지난 10년간 수도권이 더 불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수도권을 각 지역의 고른 발전 기회를 빼앗는 주범으로 간주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도 하나의 '병리 현상'으로 봤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식' 분석에 의존한 이 같은 과밀억제 위주의 정책은 수도권의 경쟁력 약화라는 쓰라린 결과를 낳았다. 글로벌 대(大)도시권과 비교했을 때 서울 및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동북아 경제권이 급성장하면서 서울 주변에는 쟁쟁한 경쟁도시들이 너나 없이 '비즈니스 허브'가 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가 세계 75개 도시를 대상으로 기업활동하기 좋은 정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은 일본 도쿄나 싱가포르 홍콩 등 주변 경쟁도시에 뒤진 9위를 기록했다. 마스터카드 측은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어느 국가에서 활동할 것인지보다는 어느 도시에서 활동할 것인지를 위주로 판단해 의사 결정을 내린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국가 경쟁력보다는 도시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수준의 지식기반(글로벌 톱 클래스 대학 유치 등)에서부터 교육·의료·영어소통 등 정주여건,쾌적한 삶의 질 등 질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비즈니스 허브가 되면 가만히 있어도 돈과 사람이 몰려들면서 경제 규모가 커지고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사막 위에 자리 잡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번영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서울과 수도권을 동북아의 '두바이'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낡은 수도권 규제의 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게 필수적이다. 지금은 연구개발(R&D)의 중심이 돼야 할 대학조차 낡은 수도권 규제 법령상으로 '인구유발시설'로 돼 있어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등 수도권의 질적 개선 자체를 가로막는 이중삼중의 족쇄들이 너무 많다.

◆지방 발전전략 찾아야

수도권 규제 시스템 아래서 지방이 반사적인 이익을 누렸는지에 대해 따져봐도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입지를 찾지 못한 기업들은 지방으로 가기보다는 해외로 나가는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化)가 진전된 첨단 기업일수록 서울·수도권이 막히면 상하이나 싱가포르 홍콩 등 동북아의 또다른 허브 도시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놓친 기회비용은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봉제공장들이 늘어나던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수도권에 있는 알짜 기업들이 지방으로 옮겨오길 기다리는 대신 각각의 지역마다 특성을 살려 자생적인 성장 기반을 확충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충청권만 하더라도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기반을 보유하고 있으나 기술 인력 이외의 경영 인력 확충,자본 조달 등 비즈니스화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기술기반 혁신형 기업이 자리 잡을 만하면 서울로 떠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주력 기간산업 밀집지역인 동남권 역시 산업단지 항만 등의 노후화로 지속적인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데다 다음 세대가 먹고 살 만한 신성장 동력도 취약하다. 호남권과 강원권 역시 천혜의 자연환경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발전전략을 추구하지 못했다.

지방은 산업기반이 부족해 자생적인 발전이 어려운 게 문제이고,수도권은 복잡하고 중첩된 토지이용규제가 질적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수도권 억제와 지방이전 유도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하면서 이를 묶어서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은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지방분권과 자율을 통한 지역주도적 발전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같은 것은 같게,다른 것은 다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기업이 수도권에 몰리면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이 저해된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