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

최진실을 처음 본 것은 1992년 방영된 '질투'라는 미니 드라마에서였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내가 기말 리포트를 제출하고 한국식품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집어든 게 그 드라마의 녹화 비디오 테이프였던 것이다. 드라마의 내용이 젊은이들의 감성과 사랑의 숨바꼭질을 잘 그려낸 데다 최진실이라는 배우의 톡톡 튀는 연기가 실감 있게 다가와 지나간 풋사랑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다.

지난 주 미국출장에서 돌아와 비행기를 내리는 순간 접한 한국의 첫 소식은 그녀의 자살이었다. 지난 20년 가까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녀와 희로애락을 나눠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을 느끼며 그녀의 때 아닌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자살은 인간의 생존 본능에 반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누군가가 그 길을 택했을 때에는 삶이 너무나 힘들고 죽음밖에는 해결할 길이 없는 막다른 상황과 맞닥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민배우를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특정인의 자살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개인의 성격,가족 및 대인관계,육체적 심리적 강도,개인적 야망과 꿈,성공과 좌절 등 철저하게 개인사(個人史)적인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모든 자살은 사회적 사건이기도 하다. 최진실 사건도 마찬가지다.

첫째,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예인 자살의 빈도는 다른 나라의 그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을 비롯해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과 메이옌팡(梅艶芳),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 등 해외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을 종종 전해 듣기는 하지만 최근 우리가 경험한 국내 연예인들의 비극적 사건들과 그 발생빈도에 있어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한 해 21.5 명이 자살하고 있는데 이는 OECD 국가 평균(11.2명)의 2배가 넘는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2006년 통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OECD 국가들의 그것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만 유독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우리나라 연예산업의 상업화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특히 소위 기획사의 '기획'이라는 것이 단기적인 인기몰이를 거의 유일한 목표로 하고 있어서 연예인들의 생명이 짧고 인기의 부침이 심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연예인들은 대개가 감성이 발달해 세상의 평판과 인기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으로 약간의 인기 하락만으로도 박탈감과 소외감의 크기가 남다를 수 있다. 이는 우리 경제가 장기적 추세에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IMF 구제금융 등으로 갑작스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일상적인 삶의 균형을 잃으면서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증가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최진실 자살의 유력한 배경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유병 여부나 그 병의 발전 정도는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의 사회적 분포나 발병빈도는 특정사회의 사회적 성격과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최소한 1명은 우울증이라는 심각한 병을 평생에 한 번은 경험하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이는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자살이 사회적 사건이라면 사회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하루빨리 사회통합과 유대 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해야 하고 개인은 개인대로 삶을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배려와 이해의 손길을 내미는 마음가짐이 절실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