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든 역전은 어렵다. 총력전을 펼쳐도 '한끗' 차이인 2등이 1등을 따라잡기 어려운 세상이다. 피 말리는 경쟁이 벌어지는 스포츠계도 마찬가지.하지만 우리는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 갑자기 1등으로 올라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도한다. 취재팀이 SK 와이번스를 찾아간 이유는 단기 역전의 비밀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 팀의 2006년 성적은 8개팀 중 6위였다. 연고를 삼고 있는 인천지역엔 변변한 고교 야구팀도 없다. 하지만 SK 와이번스는 지난해 창단 8년 만에 우승 축하포를 쏘아올린 데 이어 올해도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올 시즌은 그야말로 SK 와이번스의 독주 체제였다. 시즌 초반에 일찌감치 1위 자리에 오른 뒤 단 한번도 1위를 내주지 않았다. 다른 팀이 약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SK가 몰라보게 강해진 것이다. 고작 26명이 있는 조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美ㆍ日 야구 접목한 완벽한 컨버전스='+α'의 화수분

SK 와이번스 야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일본과 미국 야구의 접목이다.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코치를 지낸 김성근 감독과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코치로 9년간 활약한 이만수 수석코치의 배합은 미ㆍ일 야구의 완벽한 컨버전스다. 실제 김 감독은 세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대 공략법을 찾아내는 일본식 야구를 중시하는 반면 이 코치는 선수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에 익숙한 편이다. '김성근-이만수' 지도 체제 출범 당시 서로 다른 야구 스타일의 충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출하는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됐다.

-컨버전스는 현대 기업경영의 트렌드다. 영국의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경영자들을 계열사나 다른 근무지로 교차 발령하고,독일의 전기전자기업 지멘스의 경영자들은 1년에 여러차례 재무와 마케팅처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업 부문에 배치된다.


▶▶끊임없는 주전 경쟁…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가슴 졸인다

SK 와이번스에선 자신이 확고한 주전 선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붙박이 4번타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선수도 없다. 매일매일 타순이 바뀌어 상대팀이 타순을 예측할 수 없는 이른바 '플래툰 시스템'이 SK 와이번스의 전매특허일 정도다. 그만큼 각 포지션의 위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김 감독이 2개 포지션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외야수인 이진영이 내야수 수비를 보고,내야수인 정근우가 외야수를 맡는 식이다.

주전 경쟁은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다. 언제든지 내가 주전이 될 수도 있고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은 선수들로 하여금 연습과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SK 입단 9년차인 이진영(우익수)은 "선수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팀 전체의 경기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 통해 잠자는 호랑이를 깨운다

SK 와이번스에 진정한 2군은 없다. 말이 2군이지 언제든지 1군으로 향할 수 있는 1.5군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올해 SK선수단은 시즌 내내 부상 병동이었다. 이호준 정경배 등 지난해 우승을 이끈 간판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진영 박경완 박정권 등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돌아가며 1군에서 빠졌다. 그 공백을 1.5군급 대체 선수들이 메웠다.

SK 와이번스 2군은 또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해외훈련을 떠난다. 2군 포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일본 코치를 데려와 10일 정도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SK 와이번스는 지난달 26일 꼴찌팀인 LG 트윈스에 3-1로 패했다. 21일 페넌트 레이스 1위를 확정지은 뒤 치른 경기였다. 선수단은 이날 오후 11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가장 중요한 포스트 시즌을 남긴 상황에서 해이해진 기강을 잡기 위해서였다. 코칭스태프는 이 자리에 없었다. 특훈도 가졌다. 늘상 하던 것과 똑같이 몸풀기를 비롯해 타격과 수비 연습을 진행했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경기가 좋을 때 사원 교육 예산을 2배로 늘리고,나쁠 때 4배로 늘려라"라고 말했다. 직원 교육을 경쟁력 제고의 원동력으로 본 것이다. IBM은 직원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IBM은 전 세계적으로 연 평균 약 8억달러를 직원 교육비로 투자하고 있다. 이는 미국 하버드대의 연간 강의 예산보다 많은 수준이다.

▶▶주전 보장ㆍ2군ㆍ개인플레이 없는 3無 조직…매일 다른 라인업 구성

SK 와이번스의 야구는 '전원 야구(total baseball)'다. 전원 야구는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차가 크지 않아 많은 선수들이 골고루 출전하는 방식의 시스템 야구를 일컫는다. 전원 야구에서 중요한 것은 팀플레이다. 이 같은 전원야구의 팀플레이는 경영조직의 태스크포스팀이 필요로 하는 팀워크와 일맥상통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TF팀이 단기간에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선 팀워크가 필요하듯이 매일 다른 주전 라인업으로 구성되는 SK 와이번스가 이기기 위해선 선수들 간 팀플레이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SK 6년차 고참인 박경완(포수)은 "자신의 성적이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 경기에 임하는 것이 결국에는 주전 발탁 등 자신에게 보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팀플레이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글=이정호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