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의 작은 마을.주인공 베토는 자전거로 국경을 건너 구한 물건을 동네가게에 넘겨주고 푼돈을 챙긴다. 간혹 경찰에 들켜 빼앗기면서도 형편상 그만두지 못한다. 어느 날 교황을 따라 5만명의 순례객이 마을에 올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면서 베토와 이웃들은 한몫 챙길 꿈에 부푼다.

파이를 굽고 소시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달리 베토는 유료 화장실을 만들기로 한다. 아내와 딸은 황당해하지만 그는 사용료를 받을 생각에 무릎이 부서져라 자전거를 달려 좌변기를 들여오고 문짝을 단다. 그러나 교황을 따라온 사람은 8000명.주민을 제외한 순례객은 400명이었다.

교황이 머문 시간은 10여분.산처럼 쌓인 음식은 그대로 남고 거리엔 스산한 바람만 분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아빠의 화장실' 개요다. 영화는 안타까운 가난과 부패관리의 형태,매스컴의 무책임한 추정 보도 등 지구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을 가감없이 전하는 한편으로 평소 으르렁대는 가족들의 가슴 속 사랑을 일깨운다.

부산영화제는 이처럼 성(性)과 폭력,파괴가 난무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툭하면 그걸 고스란히 답습하는 한국영화에 지친 이들에게 다른 세계를 만나도록 해준다. 시대와 권력의 물결 앞에 무력하지만 그래도 희망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보통사람의 힘을 보여주는 게 그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감독 루스템 압드라셰프)도 마찬가지.배경은 스탈린에 의한 소수민족 강제이주가 이뤄지던 1949년.유대인 고아 사쉬카가 낯선 마을에 떨궈진다. 사쉬카를 데려온 노인 카심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민족과 종교 차이에 상관 없이 소년을 감싸안는다.

끝없이 감시 당하고 학대받으면서도 그들은 믿고 의지한다. 제목은 스탈린의 생일에 맞춰 펼쳐진 선물 보내기와 카자흐스탄 내 핵 실험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화는 상황과 손익을 넘어서는 인간애의 소중함을 핏대 세우지 않고 잔잔히 일러준다. 옳고 그름보다 이념과 정파에 좌우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