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7번 출구 앞.'용역깡패 동원하는 강남구는 각성하라''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등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 지역이 생존터전인 노점상들은 아예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디자인서울거리'를 추진하는 강남구를 성토했다. 그러나 바로 길 건너 6번 출구 앞은 완연히 달랐다. 평소처럼 한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같은 강남역 앞이지만 길 하나를 두고 풍경이 달라진 사정은 이렇다. 서울시는 작년 9월 디자인서울거리 1차 사업대상 10군데를 선정해 거리 조성사업에 들어갔다. 강남역 앞길인 강남대로도 그 중 하나다. 그렇지만 강남대로 양쪽의 행정구역이 강남구와 서초구로 다른 게 문제가 됐다. 강남구는 디자인거리를 밀어붙이는 반면 서초구는 당분간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강남구에 속한 길에서만 디자인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노점상들을 밀어내는 촌극이 빚어지는 것.비단 강남대로만이 아니다. 서울 중랑천 등 2개 이상의 구가 인접한 지역에선 이런 현상이 낯설지 않다.

원인은 서울시가 제공했다. 서울시는 처음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인접 구 간에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옳았다. 문제가 됐으면 바로잡는게 맞다. 그런데도 시 관계자는 "지역선정에 서울시가 관여하지 않도록 돼 있는 사업계획서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이번 강남대로 디자인거리 조성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68억원이다. 이 중 23억원은 시가 부담한다. 시민의 혈세로 진행되는 사업이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도 서울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마주보는 거리 중 한 쪽만 디자인 거리로 만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코미디"(대학생 박현석씨·25)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디자인서울거리 조성사업은 오세훈 시장이 역점으로 내세우는 명품도시 건설과 맞닿아 있다. 오 시장은 애초 도시경관 개선으로 관광객 1000만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반쪽만 만들어놓은 미완성 디자인 거리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재철 사회부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