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패닉…전문가 제언
선제대응하더라도 과민반응은 말아야


1997년의 외환위기는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부실과 외환보유액 고갈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지금은 '불신'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은행들마저 서로 외화를 빌려주지 않고,정보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안감이 '사재기'를 촉발하고,그럴수록 달러는 부족하게만 보여 천정부지로 값이 뛰고 있다.

외환위기를 직접 경험했던 강경식.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한목소리로 '신뢰 회복'을 제1의 해법으로 꼽았다. 정부정책도 분위기에 휩쓸린 땜질식이어선 안되고,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대범함과 일관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강 전 부총리는 금융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혼란이 결국 '불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환율이 오르고 은행들이 달러 구하기가 어렵다며 아우성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발 충격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섣불리 '제2의 외환위기'를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강 전 부총리는 "1996년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 남짓한 상황에서 경상수지는 240억달러나 적자가 났는데도 '위기'로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며 "당시에는 위기에 둔감했던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작은 변화에도 다들 너무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서 '외환위기'와 같은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진 전 부총리도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너무 부분적으로 이런 저런 대책을 만들면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정부 내부에서 입장을 정확히 조율해서 한목소리가 나오게 하고,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신중하게 해서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흥식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청와대 등으로 위기대응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이제까지는 일이 터지고 나서 점검하는 식이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위기대책반을 만들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예컨대 선진국이 예금보호제도를 바꾸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주택담보대출 상황은 어떤지,그 외에 다른 잠재부실 요인은 없는지를 점검하고 대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을 보다 심각하게 진단하면서 비상대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이미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본다"며 "달러 유동성이 부족하므로 대외채권을 비롯해 해외자산을 유동화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어렵게 된 상황에서 수출시장은 죽었다고 봐야 하고 내수라도 살려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시장의 신호는 달러를 더 넣으라는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고,대외 채권 등을 유동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병철 신한FSB연구소장은 "정부가 이런저런 대책을 쓰고 있지만 투기세력을 비롯한 시장의 패를 잘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가차원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중국 일본 등과 공조해서 범아시아 차원에서 액션을 취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식/유승호/차기현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