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경영학>

실물경제 죽은 '금융 활황' 거품일 뿐

'제조·서비스·금융' 균형이 국부 만들어

요즘 연일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경제는 말할 것 없고 전 세계 경제가 동반 함몰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금융자유화를 멈춰선 안된다,금융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선진금융기법을 습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는 등 보다 구체적인 주장들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금융경쟁력이란 무엇이며 그 원천은 어디인가,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금융선진화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차분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선 매일같이 접하는 금융경쟁력,금융선진화라는 말부터 살펴보자.이른바 '금융경쟁력 강화'는 해외자본조달과 외국인 투자를 원활히 유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는 얘기인지 아니면 금융을 전략산업으로 키워 금융으로 먹고살자는 얘기인지가 불분명하다. MB정부 출범 이후 금융개혁을 부르짖으며 금융통합의 법적수단까지 마련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금융으로 돈을 벌어 잘 살아보자는 후자 쪽에 더 힘이 실린 듯하다.

그런데 미국,중국,일본,인도,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경제규모별 순위 면에서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경제대국임엔 틀림없지만 금융대국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노르웨이,스위스,덴마크,아이슬란드,아일랜드,미국,스웨덴,네덜란드,핀란드로 이어지는 경제의 질적(1인당 GDP) 면에서 보더라도 미국,스위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결코 금융강국이라 할 수 없다. 결국 금융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나라는 미국,영국,스위스 정도인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는 왜,어디에서 왔는가와 관련해 저금리 정책의 오류,신자유주의 시장원리에 기초한 미 금융시스템의 한계와 정부의 감독소홀,월가 돈놀이꾼들의 탐욕과 제로섬인 파생상품시장의 당연한 귀결 등 많은 원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제금융 효과에 대해서도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양측 주장 모두 나름대로의 논거와 실증적 근거를 갖고 있지만 미국 금융위기의 근인(根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무역흑자를 내면서 세계최대 채권국이었던 1985년 이전에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물경제 내에서도 제조업이 서비스업보다 더 큰 비중을 점하는 주종산업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일본,서독과 1980년대 아시아의 후발신흥국,중국 등의 추격으로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1985년을 기점으로 세계최대 채무국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제조업 대신 수입물품에 고수익 창출을 꾀하는 유통업,서비스업과 금융업이 주종산업으로 등장했다.

주지하다시피 천연자원,광업,소재산업,부품산업,조립산업,유통산업을 통해 소비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가장 많이 창출되는 곳은 제조업이다. 특히 기술혁신 효과를 가장 많이 내는 부품·소재산업에서 부가가치가 크게 창조된다. 이는 금융경제가 아무리 활황이라 하더라도 실물경제,특히 제조업과 맞물려 돌아가는 금융경제가 아니라면 금융경제 자체만으로는 거품생산에 불과할 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금융위기의 진원은 지난 20여년 사이에 실물경제가 왜소해지면서 월가의 위험장사꾼들이 실물경제와 괴리된 채 부실채권은 물론 위험과 미래약속 등 온갖 지수(指數)를 동원해 '재무공학'이란 이름으로 제로섬의 파생상품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워 활황을 이끌어 온 데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한 나라의 국부(國富)는 사회에 유익(positive sum)을 주는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에서 이뤄지는 기술혁신으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하게 부각시켜 준다. 강력한 제조업을 토대로 하지 않는 금융선진화는 허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