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공포'가 1년만에 'D의 공포'로 …자산가격 폭락 ㆍ기업도산 늘어

글로벌 경제 복합불황 우려
경제학자 3명중 2명 "美는 이미 경기침체"

"인플레이션보다 무서운 디플레이션이 온다. "(조에그 크래머 코메르츠AG 수석 이코노미스트)

'I(inflation·인플레이션)의 공포'와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를 넘어 'D(deflationㆍ불황 속 물가하락)의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휘감고 있다. 일본이 1990년대 겪은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형태의 장기적인 자산가격 급락과 기업 도산 등으로 상징되는 '복합 불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공포감이다.

월스트리트(금융)의 위기가 메인스트리트(실물)로 전이되며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는 가운데 다우지수 10,000 붕괴와 주택가격 추락,금융사의 전례없는 디레버리징(대출 축소) 등이 겹치면서 우려는 현실화될 조짐이다. 세계 경제는 유가 폭등에 따른 'I의 공포'에서 1년이 채 안돼 'D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초까지만 해도 'I의 공포'가 세계 경제의 최대 이슈였다. 국제유가가 사상 최대폭으로 폭등하고 식품 가격이 앙등하면서 세계 경제를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어 'S(stagflation)의 공포'가 세계경제를 덮쳤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기침체 조짐이 일자 침체 속에 물가만 뛰는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란 공포감이 피어올랐다.

하반기에 들어와선 'R의 공포'가 'S의 공포'를 압도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다소 둔화된 반면 경기침체의 그늘은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에서 산업생산 주택가격 소매판매 실업률 등 대부분의 지표가 뒷걸음질치면서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이번엔 R의 공포보다 더 길고 깊은 'D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선 '경기침체→물가하락→투자위축→고용악화→총수요 감소→부동산ㆍ주식 폭락→기업파산'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미 징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돈이 안 돌며 실물 경기를 망가뜨리고 있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은 5년래 최고치인 6.1%로 뛰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올 4분기(10~12월) 미국 경제가 사실상 성장을 멈출 것으로 내다봤다. 소속 경제학자 3명 중 2명은 미국이 이미 경기침체를 겪고 있거나,올 연말까지 불황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에선 '뱅크런'(예금 대규모 인출사태)이 이어지고 금융사들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기업과 가계 부도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원유와 금속 곡물 등 상품가격도 급락세다. 6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6.07달러(6.5%) 내린 배럴당 87.81달러를 기록했다. WTI가 90달러 밑으로 내려간 것은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19개 주요 원자재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로이터CRB지수는 지난주 10.4% 하락했다. 1956년 이후 주간으로는 최대 하락폭이다.

심지어 금융위기와 실물 경제 불황이 모두 예상을 뛰어넘어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드는 1930년대식 'GD(great depressionㆍ대공황)의 공포' 시나리오마저 제기된다. 헤지펀드인 패스포트 캐피털의 존 버뱅크 회장은 "글로벌 경제가 빠른 속도로 디플레이션 위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대폭적인 금리인하 등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세계 각국의 공동 보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용어풀이]

인플레이션: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전반적ㆍ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

스태그플레이션:스태그네이션(stagnationㆍ경기둔화)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말로 경기둔화 속 물가 상승을 뜻함.

리세션:경기후퇴 초기국면에 나타나는 침체.통상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경기침체로 정의.

디플레이션:예전엔 인플레이션의 반대말이었으나 최근엔 물가하락 속 경기침체라는 의미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