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황금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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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을 농촌은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다.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들녘은 온통 황금빛 일색이다. 고개 숙인 벼이삭이 풍년의 기쁨을 말해주는 것 같고,베어 말린 콩다발을 마당에 깔고서 내리치는 도리깨질에 힘이 실린다. 마치 열병식하듯 세발로 세워둔 참깨다발을 하나씩 들고 작대기로 툭툭 치면 우수수 쏟아지는 까만 깨들이 보석처럼 귀하기만 하다. 무,배추,고구마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시골 가을의 풍성함은 과실에서도 금세 드러난다. 아람이 굵은 밤이며 볼이 붉은 대추,홍시로 발그레해지는 감,껍질이 얇아지는 배에서 황금들녘 못지않은 충만함을 만끽한다.
그래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에서 계절의 완숙성을 이렇게 서정적으로 노래했는가 보다. "주여,때(가을)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이제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들판위에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마지막 열매들의 속이 차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그 열매들이 익도록 서둘러 재촉해 주시며/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내일은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여서인지 유난히도 지루했던 올 여름 더위도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돌수록 농부들의 일손은 바빠지게 마련인데,가람 이병기의 시조에서 그 분주한 모습이 생생히 전해지는 것 같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
이제 얼마 지나면 황금들녘은 수확의 보람으로 가득찰 것이다. 다행히 올해는 이렇다 할 홍수도 없었고 불청객 태풍도 비켜갔다. 1년 동안의 수고가 고스란히 보답을 받을 차례다.
이런 풍요 가운데서 두루 살펴야 할 이웃들이 있다. 어느 시인은 '밥은 곧 하늘'이라 했는데,하늘을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도 서로 나눠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내외 경제환경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면서 살림살이 역시 고단해 질 게 뻔해,황금들녘의 기쁨도 반감되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시골 가을의 풍성함은 과실에서도 금세 드러난다. 아람이 굵은 밤이며 볼이 붉은 대추,홍시로 발그레해지는 감,껍질이 얇아지는 배에서 황금들녘 못지않은 충만함을 만끽한다.
그래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에서 계절의 완숙성을 이렇게 서정적으로 노래했는가 보다. "주여,때(가을)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이제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들판위에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마지막 열매들의 속이 차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그 열매들이 익도록 서둘러 재촉해 주시며/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내일은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여서인지 유난히도 지루했던 올 여름 더위도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돌수록 농부들의 일손은 바빠지게 마련인데,가람 이병기의 시조에서 그 분주한 모습이 생생히 전해지는 것 같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
이제 얼마 지나면 황금들녘은 수확의 보람으로 가득찰 것이다. 다행히 올해는 이렇다 할 홍수도 없었고 불청객 태풍도 비켜갔다. 1년 동안의 수고가 고스란히 보답을 받을 차례다.
이런 풍요 가운데서 두루 살펴야 할 이웃들이 있다. 어느 시인은 '밥은 곧 하늘'이라 했는데,하늘을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도 서로 나눠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내외 경제환경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면서 살림살이 역시 고단해 질 게 뻔해,황금들녘의 기쁨도 반감되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