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무기획득(무기구매)방식 중 직구매와 연구개발 어느 쪽이 군 전력강화에 효율적인가. " 돌발적인 질문에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즉답을 못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5월 어느 날.국방장관은 저녁 늦도록 다음 날 예정된 대통령 보고를 준비했다. 보고의 핵심은 5년 단위 무기도입 기본계획인 '중기국방계획안'. 이 보고는 쇠고기 수입개방 대국민담화 탓에 무기 연기됐다.

현재 국방분야 쟁점의 하나는 바로 국방장관이 대통령 보고용으로 만들었다는 '중기국방계획안'이다. 이 계획안의 실행여부에 따라 방위사업청의 운명이 뒤바뀐다. 방사청은 2006년 1월 무기획득 사업전담 기관으로 출범했다. 이곳에는 국방조달본부,육·해·공군 등에 흩어져 있던 관련 조직이 한 곳에 모였다. 2200여명의 인원이 7조8000억원(2007년 기준)의 예산을 다룬다.

국방부로선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난 방사청이 그리 곱지 않다. 무기구매와 관련된 막강한 권한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기국방계획안'을 개편,방사청 핵심업무인 무기도입과 관련된 '중기계획 수립권(정책수립권)'과 예산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 경우 방사청은 집행기능만 있는 '껍데기'기관으로 전락한다.

국방부는 '권한 되찾기'와 '방산분야 협력체계 재건'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방부는 "중기계획 작성권과 예산요구권은 원래 군의 고유권한"이라며 "방사청이 국방부를 통제하는 바람에 오히려 유기적인 방산협력체계가 무너졌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청 기능조정을 놓고 온갖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국방부가 내건 명분이 '고질적인 무기도입 비리제거'란 방사청 설립의 취지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다. 사실 방사청의 성과는 상당하다. 방사청 출범 전 방산비리 구속자는 2002년 11명,2003년 16명,2004년 63명,2005년 29명에 달했다. 하지만 방사청이 출범한 2006년 이후엔 구속자가 단 한 명도 없다. 방산수출도 급증추세다. 2005년 방산수출 실적은 2억62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07년엔 8억500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국방부가 방사청의 일부 단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 국방부로 향하던 '인사행렬'이 구매 권한을 지닌 방사청으로 돌아섰다"며 "예전엔 업체들이 밥도 사고 떠받드는 맛도 있었는데 국방부로선 박탈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다.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억측이 난무한다면 국방부는 한번쯤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전임 국방장관이자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의원인 김장수 의원의 두 달 전 국회발언은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방사청 업무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수 많은 업체와 기관의 로비를 어떻게 감당했을지 또는 비리에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중략) 덕분에 국토수호라는 국방장관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김태철 사회부차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