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미시킨 美컬럼비아대 교수 "규제 완화도 강화도 지나치면 재앙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종언 아니다"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를 놓고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갖가지 원인 분석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를 지내다가 지난달 초 뉴욕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으로 복귀한 프레드릭 미시킨 교수(경제학)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왜 미국 금융 위기에 대한 사전 경보가 없었나.

"신용평가회사들은 금융 상품을 디지인하는 단계에서부터 지원해 상품의 신용을 평가해 왔다. 상품이 정교해지는 만큼 정교한 신용 평가가 필수적이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신용평가사들의 태만이다. 주택 시장이 잘나갈 때는 괜찮았으나 거품이 꺼지면서 한꺼번에 문제가 터져 나왔다. "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거품이 생기고 꺼지는 것은 금융산업 발전 역사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시중의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데 한몫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단지 그린스펀이 저금리 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 인도 등의 저개발국 자금도 사상 유례 없이 미국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측면이 있다. 금융 수익의 기회를 찾아 미국에 유입된 자금은 부동산 붐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저금리 정책은 금융 위기의 미미한 요소일 뿐이다. "

―7000억달러의 구제 금융으로 충분한가.


"뭔가 조치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구제 금융이 본격 시행되고 나서 시장 안정 효과의 유무를 보면 조치의 적절성이 판가름 날 것이다. 정부가 다시 개입,좀 더 센 처방을 내릴 수도 있다. "

―대규모 구제 금융의 부작용은 없을까.


"이번 사태로 미국 경제가 받는 디플레이션(자산가치 하락) 충격이 훨씬 큰 문제다. 경기 하강이 심각하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구제 금융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달러화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재정적자 우려가 나오지만 어차피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불어나 있다. "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관건은 '올바른 규제'다. 미국은 1980년대 저축ㆍ대부조합(S&L) 위기 직후 많은 규제를 도입하고 강화했다. 나름대로 아주 성공적이었다. 특히 1991년 입법을 통해 적절한 규제가 적용돼 금융 시스템이 건전해지고 안전해졌다. FRB와 재무부가 공격적으로 나서 대응한 결과다. 이에 비해 1920년대 말 대공황 때는 미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바람에 금융 시스템이 붕괴된 케이스다. "

―합리적인 규제란 무엇을 의미하나.

"규제는 과도한 리스크를 초래하지 않게 예방하면서 동시에 금융상품 개발 시장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 규제가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혁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규제 강화와 규제 완화는 그네와 같다.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해도,지나치게 강화해도 금융 시스템을 망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

―'작은 정부,큰 시장'을 지향한 신자유주의 정부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 1980년대 규제 완화를 대거 단행한 탓에 S&L 위기와 같은 사태를 맞았고,이는 다시 1991년 강력한 규제를 낳았다. 주목할 점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이 한층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나 한국도 외환위기가 경제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않았나. "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아직 종언을 고하지 않았다는 얘긴가.

"위기는 항상 있었다. 미국 경제에 충격을 줬지만 역동성을 키웠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됐다. 물론 투자은행 시대는 지나갔다. 투자은행은 이제 홀로 설 수 없어 상업은행으로 편입되고 있는 기류다. 경계를 가르지 않는 '유니버설 뱅크' 추세로 간다. 투자은행을 인수한 상업은행들이 과거 투자은행들처럼 과도한 리스크를 만들어 내지 않는지 당국이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이는 유니버설 뱅크 시대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

―경기 하강이 더 우려된다고 했는데 FRB가 선제적으로 기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없나.

"FRB에서 재직했기 때문에 말하기 곤란하다. 미국 경제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다. 신용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 그동안의 부실을 대청소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성장이 둔화될 것이다. 신용 시장이 조속히 회복되려면 각종 금융상품의 증권화 시스템이 회복돼야 한다. 이런 회복 없이는 신용 시장도,경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프레드릭 미시킨 美컬럼비아대 교수 약력]

△1951년 미국 뉴욕 출생 △1973년 MIT 졸업 △1976년 MIT 경제학 박사 △1983년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2006년 9월~2008년 8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 △주요 저서;금융시장과 금융회사(2003년),화폐ㆍ은행ㆍ금융시장의 경제학(2004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