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곤두박질치면서 '기러기 아빠'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미국에 아이들을 보내놓은 부모들은 밤잠을 설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에 자녀들을 유학보낸 기러기 아빠의 충격은 훨씬 더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원화 대비 환율이 가장 많이 오른 통화는 엔화로 연초 100엔당 828원33전에서 8일 1395원28전으로 무려 68.4%나 상승했다. 원화를 엔화로 바꿔 송금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70%가량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원ㆍ달러 환율이 달러당 936원10전에서 1395원으로 49% 오른 미국 기러기 아빠보다 훨씬 더 허리가 휘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생인 딸을 일본으로 조기 유학보낸 한 증권사 부장 김모씨(43)는 "작년까지만 해도 학비를 제외한 한 달 생활비로 100만원 정도 보냈지만 이제는 거의 200만원이 들어간다"며 "환율이 이 상태로 유지된다면 한국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기러기 아빠도 아픔이 크다. 위안화가 연초 위안당 128원45전에서 195원84전으로 52.5%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기 유학길에 오른 학생들을 불러들이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두 자녀를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있는 중견 건설사 임원 박모씨(49)는 "원ㆍ달러 환율이 설마 1300원까지 가리라고도 상상을 못했는데 이제 1500원도 시간 문제처럼 보인다"며 답답해했다. 이들 지역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환율이 24.2% 상승한 영국이나 26.1% 오른 캐나다 등지에 자녀를 보낸 기러기 아빠들도 고통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은행 PB사업부의 원종훈 세무사는 "'종부세 폭탄'에도 끄떡없던 강남에서 자녀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물을 내놓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증시 폭락과 부동산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기러기 아빠들이 체감하는 환율 상승은 이미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