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국제영화제 천국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대전국제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광주국제영화제 등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걸 보면 그렇다.

영화산업이 과거보다는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전체적 여건은 크게 바뀌지 않았는 데도 우후죽순처럼 영화제가 생겨나고 있다. 영화제의 컨셉트와 목적이 다 다르겠지만 이런 현상을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동차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기저기서 자동차 관련 행사도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관광객 유치나 재정 수입 확대를 위한 마땅한 수단이 없는 지자체 중 자동차와 연계한 행사를 만들어 '함평 나비축제'처럼 대박을 터뜨리려는 곳이 상당수다. 그러나 영화나 자동차 산업을 만만히 보고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난 5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2008 자동차 마니아 페스티벌'은 주최 측의 준비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도로에서 바이크 2대가 묘기를 부리다 인도를 덮쳐 구경하던 시민이 큰 부상을 입었다. 사고 처리도 미숙해 7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다. 자동차 관련 행사에 구급차 하나 미리 갖다 놓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 끝난 '2008 군산 자동차엑스포'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은 행사답게 자동차엑스포다운 위상을 갖추려 노력했으나 분위기는 썰렁했다. 관람객이 적었다기보다는 '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군산은 인구 30만명의 중소도시다. 이런 도시가 자동차엑스포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건 군산시를 외부에 알리는 동시에 산업도시화하겠다는 지자체의 의지 때문으로 보인다. GM대우자동차 공장이 지역에 있으니 이런 행사를 통해 자동차클러스터를 조성하고,새만금을 활용해 국제관광단지를 만들면 명실상부한 서해안시대의 주역 도시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을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했다. 군산시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올해도 자동차 업체들은 마지 못해 참가했다. GM대우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판매 중인 차종을 전시하는 데 그쳤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아예 불참했다. 수입차 업계의 반응은 더욱 차가웠다. 군산과 인근한 지역 딜러들이 몇몇 차종을 전시하는 데 그쳤다. 이런데도 국제 자동차엑스포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까.

일부에선 군산시가 굳이 완성차 중심의 자동차 엑스포를 고집하기보다 지역 특색에 맞게끔 자동차와 해양레저를 망라한 복합박람회로 성격을 바꾸는 게 낫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자동차레저 분야가 계속 성장하고 있고 해양레저 인구도 서서히 늘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완성차 전시회라는 고정된 틀에만 갇혀 있지 말고 그 지역의 특색과 어울리는 행사를 기획하는 게 백번 낫다.

지자체들이 자동차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다만 연간 신차시장 규모가 120만대에 불과한 국내에서 천편일률적인 모터쇼를 새로 만드는 것은 허공에 돈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완성차 박람회보다는 해당 지역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행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시민들의 혈세는 지자체의 허접한 홍보비로 낭비되고 만다.

강호영 오토타임즈 대표 ssyang@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