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9일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분명히 쓴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밀레니엄포럼에서 "약 2400억달러 되는 외환보유액은 쌓아놓고 장식용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는 정부가 금융시장이 더욱 악화될 경우 보유 외환을 풀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 수석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에서는 △현 상황이 과연 1997년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상황과 다른 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환투기 세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금융위기를 헤쳐 나갈 경제팀의 의사결정시스템은 적절한가 등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은 '달러 사재기'와 '환투기 규제' 문제로 시작됐다.



◆박상용 연세대 교수=현 달러 유동성 문제의 핵심은 '달러 사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외환거래를 자유화한 상황에서 투기적 요소가 강한 외환시장에 개입해 투기를 잡는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제 생각은 좀 다르다. 정부가 투기세력과 싸운다고 꼭 지는 것만은 아니다. 영국은 1990년대 초 조지 소로스와 싸우다 실패했지만 홍콩의 도널드 창 당시 재정장관(재무장관 격)은 외환보유액을 써서 투기세력에 승리했다.

◆박병원 경제수석=두 분 말씀을 종합해보면 시장과는 싸우지 말고 투기세력과는 잘 싸워보라는 것 같은데 알겠다. 시장과는 싸울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투기세력과도 싸울 생각은,글쎄… 최근까지는 투기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수급(수출대금과 수입대금)차를 메워준다는 것 외에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투기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조언해 준 박 교수님.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알려달라.

◆김형태 증권연구원장=요즘처럼 주가가 빠지면 정부가 연기금 동원을 얘기하는데 가장 안 좋은 방법 같다. 외국인들이 시세차익에다 환차익까지 보고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시장이 좀 정리되면 주택담보대출(모기지)시장에서 외환시장으로 위험이 전파되는 경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박 수석은 우리 경제의 장기전망에 대해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향후 경제전망이 좋다면 (외환시장에 개입해) 대증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나은 것 아닌가 싶다.

◆박 수석=장기전망을 좋게 본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고 개선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실물경제에서 굉장한 문제의식이 있어서 장기전망을 좋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교수=금융기관들의 쏠림 현상을 탓했는데 환율이 오르게 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면 기업가적 자질을 의심받게 된다. 이를 겨냥해 하지 말라고 하기에 앞서 정부가 확고한 입장을 밝히면 시장의 불신이 사라질 것이다.

◆박 수석=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의 (외환시장에서의) '쏠림행동'이 당연하다고 했지만 그게 실무자들의 판단인지,최고경영자의 판단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무자들은 외환거래를 통해 이익을 많이 내는 게 지상목표지만 과연 글로벌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최고경영자도 그런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효익 성균관대 교수=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부처 간,당정 간에 컨트롤타워가 없어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문제다. 누가 소방서장이고,소방대원은 누구이고,그리고 주위 참여자는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일사불란한 메시지가 나와줘야 한다.

◆박 수석=컨트롤타워는 기획재정부다. 그러나 각 부처들이 1차적 정책 목표가 달라 밖에서 보면 불협화음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평소의 스탠스를 조금씩 양보하면서 잘 조율되고 있다. 현재 어려운 건 다 인정하니까.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1997년 외환위기가 임박했을 때 우리는 태국과 다르다고 강변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보니 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달라봤자 별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정부는 또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하지만 우리의 국제수지 구조는 상당히 취약하다. 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한 가지 제안하자면 앞으로 시급한 현안이 많지만 이런 위기를 계기로 IMF 때 미진했던 공공부문,노동,금융,기업 구조조정을 더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본다.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외환시장 주식시장의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수도 챙겨야 한다. 지금도 높은 생필품가격에다 교육비 등 때문에 내수가 어렵다.

◆박 수석=단기적 대응 때문에 내수대책을 챙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12월에 역사상 처음으로 세를 환급해주고 내년에도 7조∼8조원 규모의 세감면 혜택을 주려 하고 있다. 지금 수출이 잘되고 있지만 앞으로 둔화될 것이다. 그 공백을 내수가 메워줘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내수부양 조치를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장종현 부즈앤컴퍼니 코리아 사장=위기에 대응할 때 우리 경제가 글로벌 마켓과 같이 돌아간다는 시각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만의 경제정책이 아니라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을 타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석인 한영회계법인 부회장=유류비 보조금으로 몇 조원씩 쓰고 있는데 왜 그런데 돈을 쓰는지 모르겠다. 그 중에 1조원만 떼서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한다.

◆박중진 동양생명보험 부회장=경상수지 국제수지가 좋아질 거 같다는데 이것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것 보다 간접 및 우회적으로 홍보를 많이 해서 경제 주체들에 알리는 게 위기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리=홍영식/박수진/노경목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