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무게 중심이 불과 두 달 만에 '물가'에서 '경기'로 180도 바뀌었다. 지난 8월 물가불안을 강조하며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지금 경기하강은 통상적 경기하강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며 "금리 변동은 이번 한번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상황이 달라졌다

당초 이번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을 뒤엎고 한은이 이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직접적인 이유는 전날 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동반금리 인하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로 이어지면서 우리도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경기와 물가에 대한 한은의 판단 자체가 상당히 달라졌다. 이성태 총재도 이날 "8월 금리인상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세계경기가 "통상적 경기하강보다 심각한 상황"인데다 "국내 경기도 하반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밑돌고 내년 상반기도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반면 물가는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었다고 이 총재는 밝혔다.

기획재정부도 이날 펴낸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2분기 민간소비가 4년여 만에 처음으로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내수부진이 심각한 데다 고용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결국 두 달 만이기는 하지만 국내 경제의 화두가 물가에서 경기로 이동하면서 한은도 통화정책 기조변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은은 다만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것과 달리 0.25%포인트만 내렸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이거나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노출 정도가 크지만 우리는 그 정도로 타격을 받고 있지는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 최근 환율이 급등하고 대내외 금리차에 따른 외국인의 채권매도 가능성,여전히 높은 물가 등도 소폭 금리인하의 배경이 됐다.

◆일단은 잘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경기침체는 이제부터 시작인 반면 물가압력은 점점 둔화되고 있다"며 "한은의 금리 인하는 당연하고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도 "경기침체를 고려하면 지금 기준금리 수준은 너무 높다"며 "2005년 10월 이후 시작된 한은의 금리 인상 행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금리 인하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미국과 EU 등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세계 증시는 폭락했다"며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오히려 실망감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지 불과 두 달 만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내린 데다 통화정책 기조 자체도 완전 바뀐 것 같다"며 "결국 한치 앞도 못 내다보고 통화정책을 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용석/이태명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