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운주사,가을비> 부분


클레지오가 2001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쓴 시다. 이 작품에서 보듯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가다. 지난해 9월부터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로 2학기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다.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국제행사나 개인적인 사유로 방한할 때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감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1980년대에 <삼국유사>를 읽었고 첫 방한 전 이청준의 <예언자>를 읽기도 했다. 소설가 황석영,이승우씨를 직접 선택해 대담하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일일이 평할 만큼 한국 문학에 조예가 깊다.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박찬욱,이창동,이정향 감독 등 국내 영화인들을 만났고 책 <발라시네>에서도 "영화는 미래에 한국의 것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에 장기체류하며 인연을 더욱 돈독히 했다.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초청돼 2학기 동안 강단에 섰다. 최미경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항상 점잖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준 클레지오 교수는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거장"이라고 평했다.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는 "그가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해 기본적인 단어는 이해할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췄다"면서 "김치 등 한국 음식을 즐기고 서울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화여대 학술원 교수이기도 한 그는 지난 6일까지 한국에 머물다 프랑스 파리로 떠났으며 곧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최 교수는 "올 가을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되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고,가능하다면 장기체류도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