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9일 외환시장에 대규모 달러를 매도하자 향후 원ㆍ달러 환율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수출업체로 외환시장의 가장 '큰 손'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달러 매도가 극심한 '달러 가뭄'에 시달려온 외환시장에 단비가 되는 것은 물론 다른 수출기업들의 달러매도를 유발해 환율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 공급 부족' 해소 기폭제?

최근 외환시장의 수급이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다. 경상수지 적자와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매도로 달러 수요가 항상 달러 공급을 초과하는 수급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의 외화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달러 품귀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이에 따라 최근 외환시장에선 소규모 달러 매수 주문만으로도 환율이 하루 70~90원가량 폭등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들의 '달러 사재기'를 경고하고 정부도 수출기업들에 '보유달러를 풀라'고 주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외환시장에선 이 같은 이유로 '삼성전자가 정부의 환율 안정 의지에 호응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정부가 수출기업들에 '보유달러를 풀라'고 한 뒤 국내 최대 수출기업인 삼성전자의 달러 매도가 나왔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며 "다른 기업들도 이에 가세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전KPS도 이날 "공기업으로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며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 사업 수익금 가운데 500만달러를 외환시장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수출기업들이 잇따라 보유 달러를 매각할 경우 향후 환율은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외환시장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달러 매각은 외환시장에 '환율이 이제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환율 안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환율은 비정상적 상황"

정부와 한국은행도 환율 안정을 위해 구두개입과 달러 매도 등 '전방위 조치'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이날 장 초반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자 15억~20억달러로 추정되는 대규모 달러 매도개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현재 환율은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10월 이후 경상수지가 매달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혀 향후 환율이 하향 안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정책당국의 이 같은 행보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달러 매도와 맞물려 이날 환율 급등세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일본이 선진7개국(G7)재무장관 회의에서 원화 환율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한국 간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때 환율을 지지하는 것은 일본이 당연히 논의해야만 하는 의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원화뿐만 아니라 유로화도 포함해 포괄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해 한국을 꼭집어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국제공조 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당분간 안정세 보일듯

외환시장에서는 환율이 이날 장중에 기록한 고점(1485원)을 당분간 상향 돌파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당 1500원에 근접한 수준에서 투기적으로 거래하겠다고 나서는 세력이 거의 없는 데다 외환거래 물량 자체가 크게 줄어 정부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도 "환율 급등으로 달러매수 세력이 크게 줄어든 만큼 정부의 소규모 개입으로도 환율 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환율이 단기 고점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큰 폭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승윤/주용석 기자 hyunsy@hankyung.com